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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11. 2020

더 퍼스트 페미니스트 틴더남

30대 틴더 연애 표류기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그가 첫번째 틴더남이었다.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심리상담사였던 그는 취미로 수영을 한다고 했다. 나의 심리를 간파당한 것인가? 대화를 하며 나는 그가 꽤나 호감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것이 많으면서도, 대화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높여주었다. 질문을 많이 했고 내가 무슨 대답을 하든 재밌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것은 우리가 저녁마다 카톡을 주고받은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남자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은, 그가 스스로를 페니스라고 선언한 것보다는 그리 신선한 일은 아니었다. 페미니즘 소설은 몇 년째 핫이슈였고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작가도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냈다.

 

‘페미’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지 ‘모든 남성을 싸잡아 폄하하는 남성 혐오’따위의 말로 일컬어졌다. 세상은 극단주의자들이 바꾸는 거라지만, 나로서는 입에 담기 부담되는 말이 분명하다. 여성이 차별받는 것은 당연히 반대인데, 의도가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남과 여를 가르고 싸움을 조장하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단지 나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읽었을 뿐, 정확한 개념과 논리 없이 젠더 문제에 대해 공분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주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해왔다. 그보다도 내가 혹시 ‘김치녀’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이 더 우선이었다. 


그런데 그는 열렬히 페미니즘을 지지했다. 나의 장점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의심이나 거부 없이 일단 귀를 열고 듣는 것이고, 단점은 조금만 논리적으로 들리면 쉽게 여과 없이 전부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13세와 17세 아이들 사이에 자위하는 남자아이의 숫자보다 여자아이의 숫자가 더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그런데도 남학생들이 자위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건강한 행위이고, 여학생들이 자위하는 것은 부끄러워서 쉽게 입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죠. 성관계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그런 것들이 성차별을 만들어요.
성관계는 주로 남성이 오르가슴을 느끼고 끝나죠. 여성이 자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쾌감을 찾아 남성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신선하고 독특한 일로 치부해요.  

그의 말들은 내가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꽤 논리적이었고, 무엇보다 그가 여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자를 잘 알아. 그래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반드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지. 훗.’

나는 그와의 대화 속에서 이런 메시지를 찾아냈는지도 몰랐다.


아직 만나본적은 없는 남자와 너무 내밀한 생각까지 나눈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니  좀 불안했다. 판단은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어야만 내려질 수 있는 것이었다. 반드시 좋은 사람이고, 반드시 내 짝이라고,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물론 허공에서 끔찍하게 터져서 바닥으로 곧두박질 치는 상상도. 허공에 더 높이 올라가기전에 당장 만나봐야 할 것이다. 불안함을 안고 점심때쯤 그가 있는 광화문에 찾아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모두 합창해 주길 바란다.) 틀린 적이 없다!!

내 이상형과 거리가 먼 외모와 더불어 목소리 역시 실망스러웠다. 이번에도 내 심리를 간파당했는지 그는 내 앞에서 횡설수설 했다. 섹시하고 매력적인 평등주의자 상담사는 대체 어디에 존재했던 사람이었을까. 사람은 실제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욕망하는 데로 생각하고 기대한다.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뜨러운 커피를 시킨 것도. 나는 아메리카노를 원샷 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고, 격하게 집에 가고 싶었다. 커피만 마시고 바쁜 일정을 만들어서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는 그와의 깊은 대화에서 빠져나와 혼자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단지 이미지 메이킹의 수단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는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겠지. 여자를 잘 이해하는 젠틀하고 멋진 남자 이미지. 사실 내 주변에서 평등과 정의를 지지하는 남자들은 실제로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지 않는다. 평등과 정의를 위협하는 사건에 분노하고 재발을 경계할 뿐, 스스로를 어떠한 정치적 단어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경계해야 함을 몰랐다. 세 치 혀를 가지고 이룰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것은 단기적이고 야비한 것 아니겠는가.


그가 앞으로 페미니스트로서 좋은 활동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그런지 어쩐지는 알고 싶지 않다. 그때 이후로는 틴더남들과 만나기 전까지 절대,절대 깊은 정신적 교류를 요하는 대화는 하지않았다. 취미와 특기, 좋아하는 영화나 술과 같은 안전한 주제들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했다. 어쨌든 그것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남을 기대했고, 주로 전리품으로 실망을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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