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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15. 2020

연애 면접 : 본인의 장점 세가지는?

30대 틴더 연애 표류기

“본인의 장점 세 가지가 뭐예요?”


그 남자는 그 질문으로 기억된다. 그 질문남은 내가 틴더를 시작하고 여러명의 남자들과 채팅을 했을 때 연락처를 주고받은 남자였다.


화면에 꽉 차는 셀카 사진이 본인의 나이보다 약간 어려 보였다. 환하게 웃는 사진이었는데, 흔들렸거나 아니면 진짜 몇 살 더 어렸을 적 사진이라 화질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대화를 한지 이틀만에 그는 내가 사는 일산 근처로 외근을 나온다고 했다. 나는 평일 점심에 근처 스타벅스에서 그를 만났다. 건물이 넓어서 주차장에서부터 1층에 있는 스타벅스까지 걸어오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는 더욱이 초행길이라 찾아오는데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예상대로 내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정오의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햇빛을 피해야 돼’ 나는 중얼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며칠 전 방문한 피부과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보통 사람 피부는 26세부터 노화가 시작돼요. 그 뒤로는 좋아질 생각보다는 유지할 생각을 하시는 게 현명합니다. 직사광선은 되도록 피하시고 자외선 차단제 잘 바르세요.”


그러니까 나는 그늘진 자리를 옮겨야 할 이유가 두 가지나 있었던 것이다.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 노화가 시작된 피부를 좀 감추기 위해서. 우리 언니는 요즘 웃을 때 주로 눈을 가리고 웃는데, 어릴 때는 입을 가리고 웃었었다. 주름은 주로 눈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요즘 어플은 백이면 백 사람들을 모두 투명하고 매끈한 피부로 만들어줘서, 실물보다 사진을 먼저 보일 때 ‘사진빨 있습니다.’라는 말이 주의사항처럼 따라붙는다.


매장 가장 안쪽에 있는 기둥 옆으로 신중하게 자리를 잡고 거울을 꺼내 립을 고쳐 발랐다. 거울을 가방에 넣자마자 사진 속에서 봤던 사람과 비슷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 만나서 인사를 하는 순간 남자들은 공통적으로 오 개월 된 아이가 낯선 사람 보듯 몇 초간을 빤히 쳐다본다. 아마 모두 머릿속에 예상했던 것과 현실을 매칭 하는데 버퍼링이 있는 모양이다. 작은 프레임안에 보이는 것 빼고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하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실망은 어쩔 수 없다. 상대를 보며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늘 상대방의 실망은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여느 소개팅처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가, 그가 지난주 회사에서 다녀온 워크숍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직원들과 했던 활동이라면서 본인의 장점을 세 가지씩 말해보자고 내게 제안했다.


대학교 4학년 때 면접관의 입맛에 맞게 말하느라 머리와 눈알을 같이 굴렸던 적 이후로, 나는 내 장점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음.. 잘 웃는 것, 긍정적인 것, 솔직한 것?”


나는 대충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의 장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 세 가지가 무엇인지 물었다.


“음.. 무시당하는 거랑, 당연한 말 오래 하는 거랑.. 끊임없이 불평불만하는 사람?”


점심시간을 이용한 짧은 만남이 있고 나서 그를 다시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임팩트 있던 질문은 한동안 머리에 남았다.


난 한동안을 고정된 인간관계 속에 있어서 스스로를 소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를 소개할 일이 없었던 것은 내가 누구인지 희미해져 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장점이나 단점 같은 것들을 생각해서 스스로를 사용하는 법을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대답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기에 시간을 들여서 스스로를 생각해보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질문받기 전에는 굳이 말로 표현하려 시도한 적 없었고,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의 오랜연애가 30대에 끝나고 솔로가 되면서부터 그 질문남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형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되어있지 않고 나 스스로에 대한 인지와 함께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따라서 나의 이상(理想)형을 이상적이기보다는 점점 더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으로 변해가지 않았을까?


그러한 이유로 그 질문남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지만, 답을 끄집어내 준 질문자에게 공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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