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환점이 된 방 정리
“결혼하면 혼수로 침대 살 텐데, 지금 벙커침대를 사게?”
내 방이 좁아서 벙커침대를 산다고 했을 때, 몇몇 친구들은 결혼에 대해 얘기했다. 친구들의 우려와는 달리 혼수를 할 일이 없어서 벙커침대를 몇 년째 잘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내 친구들이 모두 결혼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맞이하는 시기에 나는 방 정리를 했다. 곧 다가올 결혼이나 독립을 생각하며 내방을 방치해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에 그랬다.
이사 한번 안 하고 20년간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은 관성에 의해 묵은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것과 같았다. 이삿짐을 쌀일이 없어서 포기와 폐기에 대한 고려 없이, 취향과도 관계없이 대부분의 물건들은 원래 거기 있었으니까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내 친구 경이는 일 때문에 신혼생활을 부산에서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과 다 함께 여행 겸 부산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경이 신혼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친구의 신혼집을 구경했다.
경이네 신혼집은 잡지나 티브이에 나오는 좋은 집의 예쁜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런데도 집안 곳곳에 부부의 정성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집이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취향에서 벗어난 둘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은 이런 거구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엄마, 나는 내 방에서 오래오래 살 것 같아요.
그때, 나도 내 취향을 담은 방에서 살아야지 다짐했다. 그리고 아빠가 사무실에서 쓰다가 물려준 책상과 초등시절 때부터 쓰던 침대를 버리고 벙커침대를 샀다.
내 방의 벙커침대 아래쪽에는 책상과 서랍장, 낮은 스탠드 옷걸이가 순서대로 있고 사다리를 이용해서 올라가면 침대가 있다. 평범한 아파트에 살아서 층고가 높지 않고, 그래서 침대에서는 잠잘 때만 올라갔다. 책상에 앉았다 일어설 때 자주 머리를 부딪혀서 모서리에 부직포를 댔다. 익숙해져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데는 몇 개월이 걸렸다.
침대를 위로 올려서 생긴 공간에는 사단짜리 책장을 놨고 그 옆에 일인용 패브릭 소파를 두었다. 나는 그곳에 나의 모든 취향을 담았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모았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고 매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으며 서평을 썼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책장에 한 권씩 모으며 고전을 탐독했고, 하루키와 김영하, 김훈, 황석영에게 많은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꾸준히 시류에 맞는 책들을 사고팔며 책장을 채웠다가 비웠다를 반복했다.
독서량이 늘어나면서 나는 자연히 독서토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독서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독서와 독서토론은 나에게 이제까지 생각해볼 필요 없었던 것들을 생각하게 했고 삶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일피일 미뤄오던 나에게 글쓰기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곳도 바로 독서모임이었다. 인생의 나비효과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다 나의 방 정리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방 정리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는 나의 친언니가 있다. 한때 언니 방도 내방만큼이나 취향이 없고 혼란한 상태였던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방의 가구를 모두 교체하고 깔끔하게 방을 정리했던 것이다.
엄마, 언니도 언니 방에서 오래오래 살 것 같아요.
그 당시 방이 변하고 나서 삶이 어떻게 바뀌었냐는 내 질문에 언니는 대답했다.
나는 늘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짊어지고 살았는데 그런 삶을 다시 생각해 본거지.
방 정리는 억지로 끌려가는 삶을 능동적으로 착착 끌어가는 삶으로 바꿔주었어.
맞다. 나의 삶이 엉망진창일 때마다 똑같이 내방도 그 모양이었다. 결국 방 정리는 내 취향을 찾는 시작점이자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전환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방 정리는 반환점과도 같아서 자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은 혼란하고 더러운 방을 항상 경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