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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해양 공포증에서 첫 수영강습까지

나도 수영할 수 있을까?

by 미쓰한

어릴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물놀이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바다에서 튜브를 타다가 뒤집혀서 머리를 물속에 처박았던 것이었다. 또 다른 사건 하나는 나도 기억이 안나는 것인데, 언니가 목격하고 기억했다가 크면서 나에게 말해주었다. 크고 깊은 고무대야에 내가 풍덩 빠졌고 급히 '엄마!!!'하고 부르니, 엄마가 달려와서 나를 젖은 빨래 건지듯 건져냈다고 했다. 세 번째 사건은 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친구가 다니는 수영장에 따라가서 수영강습을 한번 들었는데 수영 선생님이 커다란 두 손으로 물총을 만들어 내 얼굴에 물을 계속 쏘아댔다. 눈을 뜰 수 없게 얼굴로 날아오는 물줄기, 그게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이 세 가지 사건들이 종합적으로 나의 물 공포증을 완성시킨 걸까? 생각해보면 하나하나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우주해양 공포증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과학책에 우주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소름이 끼쳐서 그 페이지를 잘 펴지도 못했다. 사회과부도에 있는 세계지도는 바다 부분만 보아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가족끼리 바닷가에 놀러 간 적은 많았지만, 바닷속을 오래 응시하는 것은 나에게 어김없이 심해를 상상하게 했고 물높이가 허리까지만 와도 나는 자주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행히 어른이 되고부터는 우주해양 공포증은 거의 사라져서 '라이프 오브 파이'나 '인터스텔라'처럼 심해와 우주를 그리는 영화도 곧잘 보았다. 그래도 물 공포증은 여전했고, 역시 사는데 지장이 없어서 수영을 배울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스물한 살에 처음 외국에 있는 해변에 가보았다. 시드니의 본다이 비치. 그곳에서는 모두가 수영을 하고 서핑을 즐겼다. 사람들은 자연이 만든 거대한 다이빙대에 올라서 잠시 하늘을 날더니 이내 바닷속에 뛰어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수영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호주 케언즈와 브리즈번 같은 큰 도시들은 어김없이 중앙에 아름다운 라군이 있었다. 골드코스트는 서퍼들의 천국이라고 불렸고, 프레이저 아일랜드에는 바위에 파도가 부서지고 거품을 내는 샴페인 풀(Champagne pools)이 있었다. 한 달간의 여행 중에 어딜 가든 수영을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호주는 어린 나이 때부터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영을 가르치는 나라였다. 생존능력이 결여된 나는 즐거움마저도 결여된 호주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프레이져 아일랜드의 샴페인풀 @seanscottphotography

화이트헤븐 비치의 바닷속은 형형색색 코랄과 열대어들이 수놓은 파라다이스라고들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이 저마다 잊을 수 없었던 바닷속 풍경을 이야기하며 '스쿠버다이빙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덧붙였고, 나는 그날로 한화 3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며 스쿠버다이빙을 예약했다. 환불이 안된다는 말에 번지점프도 스카이다이빙도 이를 악물고 뛰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스쿠버다이빙 역시 내질러버린 것이다.


다음날 도착한 화이트헤븐 비치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정말로 스쿠버다이빙은 수영하지 못하는 사람도 할 수 있는 레저였다. 수영을 배워본 적 없다는 중국 남자도 장비를 둘러메고 호흡법을 배웠다. 하지만 배에 탄 모든 관광객들이 물속에 뛰어들 준비가 끝날 때까지 나 혼자만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스쿠버다이빙은 수영하지 못하는 사람도 할 수 있지만, 물 공포증을 가진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환불이 불가라는 사실은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게 해 주었지만, 물 공포증을 극복시켜주지는 않았다. 스쿠버다이빙에 실패한 이후로는 오히려 수영하고 싶다는 마음이 완전히 꺾여버렸다. 나의 물 공포증은 구제불능한 상태가 분명하다고 낙담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0대 물놀이의 대부분은 튜브 위에서 보냈다.


나와 언니(도넛 인간과 수영하는 인간)

서른 살의 어느 여름 날, 친구들과 함께 놀러갔던 펜션 수영장에서 나는 (느낌상)수없이 꼬꾸라져 몇리터의 물을 마셨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느라 귀코입으로 무지막지하게 들어오는 수영장물을 삼키고 나서는 왠지 물과 친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물에 빠져도 죽지않잖아???'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더 늦기전에 더 늙기 전에 다시 물 공포증과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0년은 물속에서 벌벌 떨었지만, 앞으로의 60년은 수영하는 인간으로 살아보자!


내 기준에는 수영을 할 줄 아는(자유형을 아주 조금 할 줄 아는) 친언니를 대동하여 동네 수영장 초급반에 등록을 하고 회원카드를 만들었다. 매일 새벽 수영을 한다는 아는 동생의 조언으로 백화점 매대에서 저렴한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까지 구입하고 나니 이제 곧 물개라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백화점에서 들었던 기분과는 달리 수영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말이다.


2016년 9월 7일 나는 처음으로 물 공포증을 이겨내고 수영을 배우고자 수영장에 들어섰다.


내 생애 첫 수영강습용 수영복!



취미 매거진 소개 : 낭만적인 사람들은 모두 취미를 가졌다.

나의 취향과 취미는 나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아와 함께 다양한 취미와 취향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탐구합니다. 그럼에도 글쓰는 취미만은 한결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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