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 내게 전해주었던 것들
나는 높은 곳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등산을 취미로 삼을 만한 완벽한 이유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항상(정말 매번) 누군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다.
고지에서의 경치를 마주할 때 좀 더 드라마틱하고 경이로운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을 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고 거친 호흡과 함께 땀이 나게 산을 기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봤는데!! 하는 느낌 말이다. 길게 설명했지만 그것은 한 단어로 성취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경쟁에 상처 받고 정상의 자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받던 시기에 나는 등산을 만났다. 등산은 내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정상에 도달하게 해주는 스포츠였다. (그리고 아주 낮은 동산에도 그곳의 최정상은 존재한다.)
그렇게 내가 등산을 취미로 삼은 것은 내 나이 24살의 일이었다. 한라산이나 설악산처럼 우렁찬 산을 오르는 것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서 주로 서울산을 올랐다. 서울에도 산은 어찌나 많은지 서울의 등산로는 내 주말들을 다 채우고도 넘쳤다.
다이어리에 서울의 산들을 나열하고 매주 하나씩, 어떤 주에는 두 개씩 다녀와서 산 이름에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그것은 나만의 서울산 정복 프로젝트였다.
나와 가장 등산을 많이 다녔던 친구는 미애였다. 내가 마라톤을 취미 삼기 오래전부터 미애는 내게 마라톤이나 등산을 하자고 자주 연락을 해왔다. 운동을 싫어하고 젊음을 과신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미애와 나, 둘은 등산을 하며 더 자주 만났다.
미애와 나는 특히 겨울에 산을 자주 올랐다. 그것도 아주 추운 겨울에. 한 번은 미애 어머니가 등산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 미애의 모습을 보시고 '너희는 왜 날 좋은 날 다 놔두고 꼭 추운 날 골라서 등산을 하냐'라고 고개를 저으셨다고 했다. 미애는 그 얘기를 하며 낄낄 웃었고 나도 진짜 맞는 말이라며 낄낄 웃었다.
추운 겨울에는 눈 내린 날이 한참 지나도 사이사이 등산로는 어김없이 눈길이었다. 우리는 단돈 오천 원짜리 아이젠을 등산화에 끼우고 눈길과 얼어붙은 흙길에 구멍을 내며 걸었다.
인왕산에 갔던 날은 무려 영하 13도였다. 다른 산들에 비하면 동산 수준인 340미터 남짓의 인왕산은 그날 체감상 에베레스트의 데스 존과 같았다. 그날이 미애 어머니가 '왜 꼭 추운 날이냐'하셨던 날인지도 모르겠다.
패딩조끼 위에 패딩점퍼를 껴입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인왕산길을 따라 걸었다. 인왕천약수터를 지나서 돌산을 한참 오르면 인왕산의 정상이었다. 정상에서부터 기차바위까지는 돌 언덕이 많고 나무들이 물러서 있어서 우리는 온몸으로 바람에 맞섰다. 그리고 패딩 모자에 파묻힌 얼굴을 하고서 풍경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앓는 소리를 내며 무악재를 향해 걸었다.
그 후로 봄햇살 좋은 날 인왕산에 다시 가보고는 내 기억과 달리 무척 시시한 동산이라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등산의 묘미는 사계절 다른 얼굴을 한 산의 모습이라는데, 정말 맞지 싶었다. 너 그때 왜 그랬어? 따져 물 수도 없고 그 매력에서 헤어나 올 수도 없는 두 얼굴의, 아니 네 얼굴의 사나이(산아이!)
내가 가장 자주 올랐던 등산코스는 구파발에서부터 오르는 북한산 백운대였다. 주말에는 구파발역에서부터 등산객이 잔뜩 모여 우르르 버스에 올라탔다. 구파발에 사는 사람은 주말마다 곤욕스럽지 않을까? 나는 궁금해하며 등산배낭과 스틱을 장착한 사람들과 평범한 차림의 사람들의 표정 차이를 살폈다.
해발 836미터인 백운대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폭발적으로 밀집되어있는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부터 계곡을 끼고 한참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북한산 지도와 이정표가 있는 진짜 등산로가 나온다. 진짜 입구에서는 매번 변함없이 이 문장을 뇌까린다. “왜 나는 벌써 힘든데..” 그 주변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많은 아저씨들 중에 ‘벌써’ 힘들어 눌러앉은 분들이 꽤 있는 것이라 나는 확신했다.
오르다가 힘들 때는 (부른다고 올리가 있겠냐만은) 정말 헬기를 부르고 싶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참 고맙게 나 자신도, 동행했던 친구들도 그만 내려가자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만 내려갈까?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정표에 보이는 숫자를 보며 머릿속으로 남은 고문 시간을 계산을 한다. 300미터라? 내가 100미터에 18초를 뛰니까..라는 어이없는 계산을 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백운대는 마지막 코스에 돌산이 있고 밧줄 등반이 있어서 드라마틱한 엔딩이 가능하다. 마지막에 태극기 앞에서는 엉망이 된 표정을 가다듬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신기하게도 그곳 등산객들의 간식 인심이 후해서인지 정상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매번 갈 때마다 같은 고양이인지는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아무튼 한 마리가 아니라 한가족은 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먹이를 주면 야생성을 잃고 먹이를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에서 다람쥐를 보는 것과는 달리 고양이를 보는 것은 왠지 마음 짠한 일이었고, 그것은 아마도 산으로 올라온 고양이 탓이 아니라 사람 탓인 것만 같아서 또 왠지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등산을 하고 내려와서 점심을 먹을 때쯤이면 오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피곤이 어깨 날갯죽지에서부터 온몸을 파고들었다. 물론 겨울이 더 심했다. 뜨뜻한 공간에 들어가서 막걸리 한잔이라도 걸치면 그날 저녁은 이른 시간부터 눈이 감겼다. 그러니 등산은 하루를 통으로 쓰는 취미였다.
1월 한 달 동안 7번 등산을 다니던 그해 여름부터 나는 다른 취미를 시작하며 등산을 그야말로 등한시하게 되었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라니 이제 그때처럼 친구들 앞에서 미쓰 엄홍길 역할이 가능할까 싶다. 그러나 지금 누구라도 다시 내게 쉬는날 등산을 제안한다면 팔 벌려 환영이다. 세상을 살다 보니 그만큼 배반 없이 나를 정상에 데려다주는 것은 등산밖에 없음을 꾸준히 깨닫고 있으니까.
취미 매거진 소개 : 낭만적인 사람들은 모두 취미를 가졌다.
나의 취향과 취미는 나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아와 함께 다양한 취미와 취향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탐구합니다. 그럼에도 글쓰는 취미만은 한결같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