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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오해했던 소녀

오케스트라 신입단원

by 미쓰한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뜬금없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에는 음대가 없었지만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아리방은 도서관에서 학생식당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친한 동기 언니가 동아리의 비올라 단원이었는데, 어느 날 나는 그 언니와 함께 그 동방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동방은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문 앞에는 세네 명의 단원들이 악기를 꺼내 들고 모여있었다.


"오빠, 우리 과 동기한테 연주하나 해줘요!"

첼로를 들고 있는 얼굴이 긴 선배 오빠에게 동기 언니가 말했다. 그 오빠는 잠시 낯가리는 얼굴을 하고선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 오빠가 연주한 것은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도 아는 멜로디의 바흐 첼로 무반주곡이었다.


'헐 뭐야 소리가 너무 좋잖아.'

나는 그다음 주에 오케스트라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곧 단원 모집 면접이 있었고 그것은 불행히도 마케팅 수업 조모임과 시간이 겹쳤다. 나는 007 작전 뺨 때리듯 조모임이 있는 건물과 면접이 있는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가까스로 시간을 맞췄다.


지원동기를 묻는 선배들의 질문에 나는 그때 봤던 그 첼로 오빠의 이름을 댔다.

"오~~~"

스무 살도 넘은 사람들이 사춘기애들처럼 얼레리 꼴레리 하며 좋다고 박수를 쳤다. (물론 서른이 넘어서도 사람들은 얼레리 꼴레리를 한다.)


'누가 저 사람이 좋댔나? 저 사람이 켜는 첼로 소리가 좋댔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굳이 해명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첼로에 손 한번 안 올려본 나는 첼로 단원이 부족한 덕에 그해 오케스트라 18기 단원으로 뽑히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동아리 선배들에게 레슨 선생님을 추천받고 예술의 전당 앞 악기거리에서 첼로를 사서 레슨을 시작했다.


다들 슬슬 취업준비를 시작하는 3학년에 나는 한 학기를 통으로 첼로에 쏟았다. 실로 멋대로 살던 시기였다.


나는 첼로를 가지고 동방에 입성하자마자 그 첼로 선배의 여자 친구에게 엄청난 미움을 받았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여자애는 나와 동갑이었고 바이올린 단원이었다. 그 애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누군지도 모르고 그 애한테 밝게 인사를 했다. 그 애는 즉시 차갑게 돌아서서 동방을 나갔다. 그 애가 나가자 다른 동기들이 그 애가 누구인지 나에게 말해줬다.


나는 그 첼로 오빠를 좋아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왜냐면 나는 이미 다른 학교에 남자 친구가 있기도 했고, 굳이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에게 관심이 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첼로 오빠와 단둘이 밥을 먹어본 적도, 커피를 마셔본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자연히 그것이 오해로 밝혀질 거라 생각했다.


나는 미움을 받는 일이 좀 불편했지만 크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아마 크게 힘들고 괴로웠던 것은 미워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흔히 초심자들이 그렇듯, 첼로에 빠져서 공강 시간마다 동방에서 첼로를 연습했다. 잠깐이었지만 몇몇 선배들 사이에는 ‘동방 가면 걔 있어.’라고 할 만큼 동방의 지박령이었다. 그래서 그 애가 동방에 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이었는지 나는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 애는 나처럼 멋대로 사는 게 아니어서 동방에 놀러 오는 것보다 취업준비에 힘을 쏟았을 거라는 추측이 들지만 말이다.

가을 연주회는 9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간신히 첼로 운지법을 뗀 초보라서 연주회 곡 세곡 중에 한 곡만을 연습했다. 많은 노력과 연습 참여 없이 리허설 몇 번으로 연주회에 참석할 수 있는 그 첼로 오빠가 나는 부러웠다.


연주회 연습이 시작되면서 나는 다른 학교에 다니는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연주회 연습을 꾸준히 하면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 동아리 내 CC는 어쩐지 위험한 거 같아서 사귀는 건 동아리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나는 한 번의 연주회와 졸업식, 입학식 연주를 마지막으로 동아리 활동을 줄였다. 그리고 클라리넷 친구와 헤어졌고, 졸업을 했고, 몇 년 후에 첼로를 중고나라에 팔았다. 70만 원에 샀었고 30만 원 정도에 팔렸다. 나는 첼로를 단기간 열심히 했고 음악적 재능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후로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르고, 어느 날 그 첼로 오빠가 뜬금없이 연락을 해왔다. 밥을 사준다기에 외로운가 보다 생각하고 그 오빠를 만나러 갔다.

“너 그때 나 좋아했었잖아.”


사람들의 집단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쩐지 이런저런 오해를 품기도 하고 쌓기도 하는 것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풀러야 할 필요가 없어서 그대로 두었던 오해들은 생각보다 여러 개가 있었다. 그나마 오해하게 두어도 피해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한가지 더, 그 클라리넷 친구와의 연애가 비밀연애였다는 나의 생각 역시도 큰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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