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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 그림과 글쓰기

내가 가진 표현 욕구에 대하여

by 미쓰한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라는 영화였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대스타인 주인공이 노래를 불렀다. 시청각적 자극이 별 연관도 없는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 생각의 연결고리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처음에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면 어떨지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면 글로 한번 써보아야지. 그것은 오래전 내가 색연필 아트를 취미 삼았을 때를 생각나게 했다.

그때 나는 색연필로 뭐든 그리고 싶었다. 전문가에게 미술을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는 눈에 보이는 장면을 색연필로 어떻게 표현할지 혼자 한참을 고민했다.

이태원 소방서 뒤편에는 내 전 애인이 살았다. 언덕배기를 쭉 따라 올라가면 초등학교가 나온다. 부동산이 있는 골목으로 좌회전을 해서 계속 올라가면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 이슬람 사원을 끼고 또 좌회전을 해서 허름한 아파트 단지 앞으로 가면 우리가 야경 명당이라고 불렀던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는 롯데타워와 서울시내가 다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 자주 갔다. 그곳에서 야경을 보며 나는 그 풍경을 그리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어떤 색을 써야지 저 불빛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 단순히 떠오르는 색과는 아마 전혀 다른 색을 써야 할 거야.

그의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니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했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우리 앞에 선 가로등 불빛이 계단을 노랗고 뿌옇게 비췄다. 저 멀리 건물들도 밤하늘 아래 작은 불빛으로 총총 빛났다. 우리는 빛나는 곳에서 빛나는 곳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집에 와서 시도해본 그림들은 모두 영 엉망이었다. 나에게 빛들은 색연필로 표현하기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내가 표현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밤의 불빛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기억의 감정은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관찰과 시도의 시간 동안 나는 몰입했고 무척 즐거웠다.

이제는 어떤 장면을 보거나 어떤 감정이 들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할지 생각한다. 주말에 만났던 그 좀 얄미웠던 사람을 어떻게 묘사하면 글에서 얄미움이 묻어날까. 아침에 느꼈던 우울함이나 외로움은 어떻게 써야 유치하지 않을까. 역시나 써보는 것들 마다 영 엉망이다. 진부한 표현이나 유치한 문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재능은 모르겠고, 이것은 분명히 노력과 시간의 문제일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나마 아직까지 취미가 색연필이나 키보드만 있으면 표현 가능한 것들이라서 다행이다. 내가 영화나 드라마 연출이라도 하고 싶은 거였다면 꽤나 큰돈을 들여 시도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색연필은 프리즈마였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깜짝 놀랐다.)

그래도 색연필 때와는 달리 글쓰기는 전문적으로 배워볼까 한다. 전문가에게 배우고 글을 쓰는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글을 쓰고 싶다. 표현의 욕구가 충만하니까 어떻게든 분출해야 삶이 더 풍요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고 쓰고 표현해야지. 초반의 이 야무진 계획만큼 실행이 잘되기를. 이번 주말 글쓰기 강의는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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