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슬픔의 힘

by 파인애플


저녁시간대의 오르막길 위 마을버스 정류장 의자에서

슬픔에 젖어 머리를 숙이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미동도 없이 숙여진 고개가 처연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도 그냥 비스듬히 서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날은 너무 추웠고

여학생이 연신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울음소리로 바뀌지 않길 잠시 기도했다


문득 너무 춥다는 생각에

정류장 의자 안쪽으로 움직이려 하니

어느샌가 여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언제 올지 모르는 마을버스를 포기한 채

내리막길을 내려간 것 같았다


몹시 추운 날이라 마을버스를 타는 게 나았을텐데

아무래도 슬픔이 그녀의 발걸음을 재촉한 것 같아서


슬플수록 발걸음이 빨라지는구나

그런 슬픈 마음이 들면서


반복되는 슬픔 속에 오히려 발걸음이 더디어진

나의 슬픔이 가진 힘을 돌아보았다


내 앞에선 모두가 답답함을 품는다

느리고 둔하다는 그들의 반응에서 나는

내가 원해 느려진 게 아니라

반복된 슬픔이 원해 느려진 거라고 말하려다 말고


그냥 조용히 슬퍼서 빨라진 그들을 등지곤 했는데


날 먼저 등지고 떠난 그 여학생도

슬퍼서 행동이 빨라져버린 내가 등진 그들도


어쩌면 반복되는 슬픔의 힘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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