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긴팔 종신형에 처한다

선명한 진실이 지독한 불행을 데려왔다

by 김치즈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라던데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악이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참담하고 절망의 심연으로 빠지게 한다.


이에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으로 가끔은 스스로를 외면하고 되도록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 대해 고백해 보려 한다.


나는 신경섬유종*이라는 병을 안고 태어나 평생 벗어날 수 없는 타인의 시선이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었는데, 내가 만든 감옥이니 내 발로 나오면 그 길로 석방이지만

도무지 감옥에서 벗어날 방법을 아직까진 찾지 못했다.


이 병을 처음 안건 7살 무렵이었는데,

남들과는 다르게 반점이 많았던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찾은 종합병원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을 진단받았다. 물론 지금의 나이에 그 말을 들었다면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암담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봐도 유치원생이었던 난 그 말을 듣고도 아무 생각도, 아무 걱정도 없었다.


불행하게도 그날 사형선고를 받은 건 내가 아니라 평생 딸 걱정만 하며 살게 될 우리 아빠였다.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내 병을 모르는 체하며 살았다.

물론 친구들과 다르게 조금 까맣고 점이 많은 피부가 신경 쓰였지만 종양이 발현되지는 않았으니,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도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도무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종양들이 곰팡이처럼 퍼져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팔에 난 종양들이 신경 쓰이니 다리에 난 종양들이 눈에 들어왔고

난 나의 모든 껍질을 벗겨내 곳곳을 탐색해야 했다.


결국 내 발로 찾은 대학병원에서 난생처음 보는 기계들로 온갖 검사들을 받았고

이후에 내려진 두 번째 신경섬유종 진단은 인생을 갉아먹었기 시작했다.


선명한 진실이 지독한 불행을 데려왔다.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퇴행했으며 매일이 외롭고 참담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사라지게 될 날들만을 손꼽게 됐다.


점점 많아지는 밀크색 반점과 깨점들, 그리고 온몸에 퍼지고 있는

종양을 도무지 두 눈으로 쳐다볼 수 없었던 나는

온몸을 긴 옷으로 가리고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를 잠식하는 곰팡이 같은 병을 잠시나마 도려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깊게 파고든 대가로

나에게 평생 긴팔만을 입어야 하는 종신형을 내렸다.


물론 홀딱 벗고 있어도 땀이 주룩 흐르는 계절엔

끈적한 날씨만큼이나 외면하고 싶은 퀴퀴한 관심이

내 심연을 또 한 번 파고들어 이미 불행에 빠진 날 더 깊은 불행의 감옥 속에서 마주 보게 한다.


“한여름에 긴팔 입고 다니시면 안 더우세요?”

“제가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감옥에 갇힌 나를 외면하고 비겁하게까지 만드는 병을 위해 준비한 변호는

아직 여기까지다.


신경섬유종* : 유전자 이상으로 인해 커피색 반점, 종양이 온몸에 생기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