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종양은 흉터를 남기고
내가 가지고 있는 병은 가끔 생사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운 좋게도
사지육신 멀쩡하게 숨도 개 잘 쉬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눈에 띄는 종양이다.
그리고 이 종양들은 재수 없게도 내 몸에 평온하게 업혀있으면서 늘 나를 선택의 기로에 서있게까지 한다.
바로 종양을 남기느냐, 흉터를 남기느냐
짤 수도 없이 농익지 않은 여드름 같은 자잘한 크기의 종양들은 애써 흐린 눈 하며
품고 가지만 점점 커져 자기 존재감을 마음껏 뽐내는 종양 친구들은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어 필수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크기가 커진 종양들은 옷 위로 볼록 튀어나와 관종력을 뽐내는 것도 있지만
혹여 신경을 누르게 되면 생과 사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
하지만 태초의 상태보다 더 깨끗하게 주방의 모든 얼룩을 지워주는 매직 블록처럼
종양들이 애초에 내 피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제거되면 좋으련만
종양은 늘 흉터를 남긴다
흉터 빨로 세상 모든 인류에게 시비 프리 패스권을 받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면
긍정적인 마인드로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종양보다 볼썽사납게
남은 흉터들은 오히려 자잘한 종양들보다 신경 쓰여 제거 수술을 망설이게 만들곤 한다.
특히 흉터 연고 비용이 수술 비용을 한참 앞지르거나 켈로이드라도 남는 날에는
미술계와 공예계가 모두 인정한 똥손에다 의학지식이 전무후무한 나라도 흉터를 다시 찢고 다시 예쁘게 봉합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흉터 연고 사는 돈만 아꼈어도 이미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했을 거라는 뻔뻔한 마음이 불쑥 올라오는 건 덤이다.
물론 흉터 제거 레이저라는 훌륭한 기술이 있긴 하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는 환후들의 솔직한 후기와 더 이상 피부에 돈을 썼다간 파산할 것 같은 양가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이과 녀석들이 원통 안에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모든 종양과 점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의학 기술을 개발하길 바라지만 1g이라도 더 시급한 병을 개발하느라 늦어지는 듯싶어 결국 오늘도 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이 길은 옷 위로 존재감을 뽐내는 관종 종양들이 더하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 더 이상 흐린 눈 할 수 없게 되는 날이나 신경을 거스르는 통증을 참을 수 없게 될 때 끝이 나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도 적응 못한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내가 유일하게 하는 기도는 단 하나뿐이다.
제발 흉터 안 남게 해 주세요
어려우시다고요? 그럼 작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