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과 동시에 유병자의 삶을 살게 된 나는 자라면서 점차 살아남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은 멀쩡한 척 나를 속이고 만들어낸 평범함 뒤에 숨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와 달리 가끔 종종 미디어를 통해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이 조명되곤 할 때가 있다.
어릴 땐 티비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왔던 게 참 싫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내가 이런 병을 앓고 있는지 모르는데 혹시나 티비를 보고
“너랑 똑같던데? 너도 그 병 있는 거 아니야?”라고 큰 소리로 떠드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도, 제삼자의 눈으로 보니 내가 가진 하자가 더 크게 드러나는 것 같았고
나의 약점이, 내 비밀이 온 세상에 떠벌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고, 견고할 것 같은 가치관 휙휙 바뀌곤 한다.
지금 내가 같은 방송을 본다면 정반대의 생각을 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다.
세상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렇다.
봄과 가을이 되면 꽃구경을 온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에 살았던 나는
이 꽃들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꽃들이기에 넓은 대지에 가득 피어있는 꽃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대학 시절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문구가 유행했을 때도 꽃길만 걸으라니.
그게 얼마나 감흥 없고 지루한 건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취업하고 고향과 멀리 떨어져 살다 오랜만에 꽃들을 보니 그제야 그 진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꽃길만 이어지면 그 순간이 특별한지도 모르고 눈에 차지도 않는다.
먼지 날리는 흙길도 걷고 질퍽하고 푹푹 빠지는 진흙 길도 지나와야
꽃의 예쁨도 소중히 느낄 수 있는 거다. 그러다 보면 고난만 있는 것 같은
진흙 길도 지치지 않고 걷는 건강함이 더 좋아지는 날도 오겠지.
평범함 뒤에 숨어 안전할 줄 알던 나의 과거는
사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자가 많았고,
세상의 이야기를 같은 시선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또 다른 이야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새롭게 터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