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모음

언론고시 작문 연습글 (1500자, 70분)

by yyoung

주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도시

<꼭대기 층 수감자들> 24.10.26


그 병원은 반포 한복판에 있다. 으리으리한 3차 종합병원. 병원 20층 꼭대기에는 소아암 환자를 위한 무균 병동이 있다. 환자 한 명 당 보호자 한 명씩 출입할 수 있다. 아이들의 소아암 판정과 함께 각 가정에서 차출된 보호자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모두 제한받으며 기약 없는 수감생활에 들어간다.


수감자들은 장난 식으로 그곳을 호텔이라고 불렀다. 강남의 그 어떤 호텔에 견주어도 뷰와 가격이 밀리지 않는다고. 차이가 있다면 호텔은 잠시 머무르는 곳이고, 병원은 어쩌면 영원히 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쌓이는 영수증은 덤이다.


물리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었으나, 꼭대기층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검정색이었다. 세상이 보기에도 그랬는지 20층은 늘 안개에 싸여 잘 보이지 않았다. 까까머리의 어린 환자들 옆에서, 벌건 눈을 한 보호자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벌건 이들은 보통 신입이었다. 밤마다 손수건을 들고 1층 미사실을 들락거렸다. 출입할 때마다 온 몸을 소독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둘째치고, 눈을 끔뻑이며 누워있는 아이들을 두고는 가벼운 외출도 어려웠다. 어쩌다 선배들 손에 이끌려 요 앞 매운 아구찜이라도 먹으러 나가는 일이 전부였다.


반 년 이상 된 경력자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새벽 회진이며 채혈이며 신경쓸 게 많았다. 제시간에 자고, 평범한 옷을 입고, 가끔 외출도 하고, 애들 몰래 맛있는 것도 먹었다. 도시에 완벽히 녹아든 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고속터미널역의 수많은 직장인과 관광객에 섞여. 어쩌면 편한 옷을 입은 동네 주민 무리에 끼여. 평일 오전 11시에 백화점 식당에서 매운 아구찜을 뜯는 팔자 괜찮은 엄마들이 됐다.


이들은 사실 어젯밤 거제에서 헬기를 타고, 그제 새벽 마산에서 사설 응급차를 타고, 방금 전 인천에서 폭설을 뚫고 도착했다. 헌혈증이 모자라 고민이기도, 골수 이식자를 찾지 못해 골치기도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 5시.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불이 켜질 때, 맞은편 건물 꼭대기 층에도 불이 켜진다. 첫 회진 시간이다. 희미한 스탠드 조명 아래 얼굴들이 보인다. 바쁜 발걸음이 멀어지면 병동의 불은 다시 꺼진다. 동이 틀 때까지, 이들은 다시 보이지 않는다. (1122자)






주제: 신

<신입사원> 25.1.26


그 날은 안전한 날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윤주가 한 말은 아니고 두 달 만에 만난 남자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니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안전한 날이 어쩌고 저쩌고.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쩌고 저쩌고. 그러니까 결론은 안 끼고 하고 싶다는 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추호도 먹히지 않을 말이었지만 그 날은 피곤했고, 남친은 집요했고, 입씨름할 기운도 없었다. 만족한 얼굴의 남친을 등지고, 윤주는 어딘지 찝찝한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간밤의 찝찝함은 금세 잊혔다. 정신없이 출근하느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윤주는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한다. 대기업 계열사에 학교 연계 채용으로 입사한지 두 달. 겨우 수습 티 벗고 제 몫 하나 싶은 시기다. 웬만하면 다 정규직 전환된다지만, 3달 차에 최종평가가 중요하니 마니 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부지런히 출근 지문을 찍고 커피를 내려 자리에 앉았다. 윤주는 꼭 이 회사에서 취준을 마무리할 작정이었다.


26살이면 더 이상 어리지가 않았다. 학교는 소위 신촌에 위치한 명문대였는데 중간에 로스쿨 준비를 하다가 2년이 비었다. 엄마한테 미안하고 친구들 볼 면이 없어서 취업은 반드시 빠르게, 번듯한 곳에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다행히 수험 이력을 살려서 법무팀에 들어왔다. 몸은 피곤해도, 나름 ‘잘 살고 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다.


며칠 뒤에도 윤주는 일찌감치 출근해 피티 대본을 외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너무 무리했는지 속이 메슥거렸다. 얼마 전부터 이런다. 뭔가 신물도 넘어오는 것 같고...? 불현듯 어떤 생각이 윤주의 머리를 스쳤다. 생리 예정일이 언제지? 윤주는 빠르게 생리 주기 어플을 확인했다. 예정일이 한참 지나 있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며칠 전 남친과의 일이 걸린다. 에이, 피곤해서 그렇겠지. 지금 생리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는 무슨. 점심시간 쯤 되자 불안감이 극대화됐다. 신입사원이 임신하면 어떻게 되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나? 권고사직 당하나? 여기 여성 임원 비율이 얼마나 되더라? 무슨 정신으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쓸 데 없는 고민 하느라 업무에 집중을 못했다는 자괴감까지 몰려왔다. 근데 이게 쓸 데 없는 고민인가? 양가감정이 들었다. 남친은 불안하다는 카톡에 ㅠㅠ. 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미친 새끼. 헤어질까. 애낳고 왔더니 책상이 없어져 있더란 인터넷 썰들도 떠오르고 엄마 얼굴도 떠올랐다. 이러나 저러나 집중 안되긴 마찬가지였다. 목구멍으로 시큼한 구토감이 차올랐다.


처참한 기분으로 퇴근 채비를 하는데 아래에서 반가운 이물감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이 들기도 전에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속옷에 흐릿한 갈색 피가 비쳤다. 하. 생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 있던가. 순식간에 신물이 내려가고 안도감이 몰려왔다. 온 몸에 힘이 빠진 윤주는 변기 앞에 주저앉았다. 남친에게 카톡으로 욕을 한 바가지 보내고 나니 갑자기 인스타에서 본 외국 명언이 떠올랐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대충 인생이 시큼해도 즐기라는 말 같다. 하. 두 번 시큼했다간 사람 잡겠네. 윤주는 다시 한 번 치미는 구토감을 삼키고 일어섰다. (1559자)






주제: 도량발호

<가화만사성> 25.02.05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개가 됐다. 사람 좋게 웃는 듯 싶다가 어느 새 엄마 머리채를 잡고 늘어졌다. 그리고 그녀 곡소리 반주 삼아 신명나게 팼다. 벽시계도 부수고, 부엌 찬장도 부수고, 동그란 그 광대뼈도 부쉈다.


내 아버지 김길환. 삼대 독자 귀한 아들이라고 피난 보낸 남한 땅에 갇혔다. 평양 사투리 쓴다고 한국군이 쫓아와서 다리를 접질렀다. 목숨은 건졌는데 장애가 남았다. 우리 사는 달동네길 쭉 따라 내려가 개천 건너 아파트 현장서 쎄멘 나르고 공구리 쳐가며 벌어오는 그 만 원 돈. 다리 병신 천애고아 아버지 평생 부릴 수 있는 유일한 권세였다. 그걸로 막걸리 한 병 사고 남는 돈 안방에 던져 넣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리 절고 노가다 뛰어도 착한 사내라 했다. 광대뼈가 다 부러진 꼴을 하고도 소중하게 봉투를 품에 안았다. 엄마 괜찮아 물으면 돈이나 제대로 갖다주는 네 아부지 착한 사내라고 했다. 나랏님을 보고도 비슷한 소릴 했다. 덕분에 밥 먹고 사는게다. 군복 입고 겁을 줘도 도로 깐다고 산과 들을 밀어도 그렇게 말했다.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 옆집 할매는 매일 혀를 내두르며 찾아왔다. 엄마 곡소리가 담 넘어가는 날엔 냉수 들고 찾아와 아버지를 달랬다. 군인들에 끌려갔던 아랫집 장남 바보되어 돌아온 날도 냉수 들고 그 집을 찾았다. 아버지 코골이 아랫집 곡소리 군인들 발소리 뒤섞인 혼란한 밤마다. 나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귀 막고 달달 떨며 뜬 눈으로 밤 지샜다.


영원히 대통령인줄 알았던 사람이 내려가고, 또 몇 번 인가 그 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뀔 때까지. 아버지는 엄마를 팼다. 그리고 서슬퍼런 아버지 얼굴은. 세상이 시끄럽고, 누가 자꾸 죽고, 누가 누굴 해치는 으레 그런 일들. 아랫집 여공이 손가락을 잘렸네, 어떤 사내가 몸에 기름을 붙였네, 누가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죽었네 하는 참혹한 일들과 세상 없이 겹쳤다.


그러다 어쩌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지난 겨울 평범한 화요일에, 세상이 많이 좋아져 아버지 패악질 같은 것은 전부 옛날 일이 되었을 즘에. 그때 그 달동네에 어쩌다 발걸음 했을 때에, 멀리서부터 콩, 콩, 콩. 알 수 없는 고동이 느껴지는 거였다. 그러다 엄마 핏자국 번진 그 집에, 아빠 코 골던 바닥에 누워 나 혼자 동그랗게 눈 뜨고 있으면, 당최 그 알 수 없는 소리는 점점 커지는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제 심장 박동도, 재개발 포크레인 소음도 아닌, 공수부대 실은 헬기 소리임을 마침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즉시 귀를 막고 달달 떨며 새우처럼 등을 굽히게 되는 것이었다. 쿵, 쿵, 쿵. 세상 없이 날뛰는 누군가의 발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은 것이었다. (1299자)







keyword
팔로워 2
작가의 이전글무료한 오후의 당근케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