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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선 Oct 12. 2024

13화 : 가드망제 - 출구는 없습니다. (2/3)

쉬는 시간을 끝내고 돌아온 맥스는 무심히 카트에 준비된 미장 플라스를 싣고 1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조나단에게 눈 길조차 주지 않았던 그다.


<남은 시간 18분>


조나단의 수첩 위 적힌 프랩 리스트에는 일주일 전 실습 면접 때 했었던 샬롯 20개 브루노이즈, 그리고 푸아그라 다이스만이 남아있었다. 스스로에게 어떠한 질문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팀원은 아니지만 그 스스로 노력해 얻어낸 자리였기에 억울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하던 일과 해야 할 일들에 집중했다.


"어때."


수셰프 헨리가 테이크 아웃 컨테이너를 조나단에게 건네며 물었다.


"거의 다 해가요. 근데 이게 뭐예요?"


"너 점심이다 임마. 배고플 거 아냐."


땀범벅이 된 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야 울지 마. 다시는 안 챙겨준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셰프님."


존이 구레나룻에 흘러내리는 땀을 냅킨으로 닦아내며 웃었다.


"앞으로도 항상 그 자세로 일 해. 잘하고 있어."


헨리가 가고 얼마 되지 않아 루씨는 설거지 스테이션에서 도마를 들고 나와 조나단의 옆에 놓았다. 그녀는 칼가방에서 본인의 칼을 꺼내더니 푸아그라 다이스를 말없이 시작했다. 오직 둘 뿐이었던 프랩 키친의 넓은 공간은 그들의 칼질 소리로 가득 찼다. 3시 50분이 되기까지 5분 남짓 남은 상황에서 그는 루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정신조차 없었다.


"다했다. 이거 말고 할 건 더 없지?"


루씨가 존 어깨 너머로 프랩리스트와 타임라인이 함께 정리된 그의 수첩을 슬쩍 보며 물었다.


"네. 감사해요."


"고맙긴. 팀이잖아."


루씨는 그녀와  존의 도마를 포개어 설거지 스테이션에 가져다 두며 말했다.


"첫 번째, 쉬는 시간 전부터 난 네가 도움이 필요할 걸 알고 있었음에도 도와주지 않은 이유.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요리사인지 궁금했어. 두 번째, 다 끝나가는 마당에 와서 도와준 이유. 네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리고 마지막 이 순간만큼은 너도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 그는 푸아그라가 묻은 애꿎은 칼을 씻어댔다.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다음부터는 제가 꼭 스스로 다 해볼게요."


"알아. 네가 다 할 수 있는 거. 근데 다음부턴 팀을 믿고 도움이 필요할 땐 꼭 말을 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용기고 실력이야. 이거 들고 1층 키친으로 올라가면 되는 거지?"


존은 조용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계단으로 올라오는 루씨와 존을 본 저스틴은 평소처럼 크게 외쳤다.


"LET'S CRUSH TONIGHT!"

(오늘도 서비스도 달려보자!)


"OUI, CHEF."

(네, 솊.)


쿡들도 저스틴의 에너지에 지지 않았다. 구호를 외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스틴의 스테이션 위 영수증 기계가 손님들의 주문 종이를 뱉기 전까지 조나단은 가드망제 테이블을 닦고 또 닦았다. 혹시나 잊고 가지고 오지 않은 것들이 있는지 계속해서 체크했다.


"아. 커리 비네거렛. 맥스, 저 프랩키친 좀 빨리 갔다 올게요."


맥스는 존을 한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존은 서둘러 헨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지하 프랩 키친으로 달려 내려가 워크인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디 있는 거지.'


그 사이 저스틴은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 팀에게 오더를 내렸다.


"Fire table 2.... and table 5 fire...."

(테이블 2번에..... 테이블 5번은....)


저스틴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존의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존이 입사 후 알렉스에게 가드망제 스테이션 트레이닝을 받을 때였다. 알렉스는 팀원들에게 정신없고 급할 때만큼은 헷갈릴 수 있으니 커리 비네거렛을 항상 6쿼트 켐브로에 넣어 워크인 냉장고에 보관하라고 강조했었다. 존은 계속해서 6쿼트짜리 캠브로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바꿔했다. 오늘 커리 비네거렛을 프랩 한 사람은 본인이 아닌 맥스. 그렇다면 분명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는 워크인 냉장고에서 나와 프랩키친의 가드망제 스테이션 테이블 밑 냉장고를 열었다.


'찾았다.'


존은 작은 플라스틱 쿼트 컨테이너에 필요한 만큼 비네거렛을 덜어 위층 서비스 키친으로 뛰어갔다. 그가 뛰는 모습을 본 안드레아는 그에게 진정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스테이션으로 가던 존은 음식이 그대로 담긴 그릇을 들고 주방을 향해 걸어오는 잔뜩 긴장한 표정의 캡틴 사년과 눈이 마주쳤다.


(캡틴 : FOH 직급 중 하나. 캡틴은 본인이 맡은 테이블들에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제공함.

버스보이 <러너 <캡틴 <매니저 <AGM <GM <Food and Beverage director 순으로 순으로 직급이 나눠짐. 소믈리에는 별개)


샤넌은 조용히 저스틴에게 다가가 말했다.


"셰프님, 죄송한데 테이블 5번에 여성분이 한 입 드시더니 뭔가 상한 것 같다고 돌려보냈어요."


가드망제 팀에서 나온 캐비어 애피타이저 디쉬였다.


. 저스틴은 아무 대답 없이 그녀가 가져온 그릇을 페스 스테이션 밑 테이블로 내렸고 플라스틱 테이스팅 스푼으로 맛을 봤다.


‘제발. 제발.’


얼어붙은 조나단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바라보았다.


"윽...."


저스틴은 헛구역질과 함께 냅킨으로 입을 가리더니 음식을 뱉어 냈다.


"지금 케비어 디쉬 주문 몇 개 들어왔지? 그리고 앞으로 10분 동안 예약되어 있는 인원이 어떻게 되는가?"


"네 개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다. 십분 내로 2 테이블, 총 4명 예약되어 있습니다."


헨리가 대답했다.


"샤넌 자네는 당장 안드레아에게 캐비어 디쉬 평소보다 5분 정도 늦게 나갈 거라고 전해줘. 금방 고칠 수 있는 부분이고 10분 이내로 새로 들어오는 손님이 총 2팀뿐이니 시스템에서 캐비어 디쉬 홀드 시키지 말고 주문은 계속해서 받도록 해. 그리고 헨리 자네는 지금 프랩 키친으로 내려가서 캐비어에 올라가는 크램 프레쉬 새로 휘핑 좀 해서 빨리 가져오도록 해."


"네, 솊."


샤넌과 헨리는 저스틴의 오더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그 즉시 움직였다. 샤넌이 그릇을 가져오던 그 순간부터 저스틴의 표정에는 그 어떠한 작은 변화도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진지했다.


"가드망제."


"네, 솊."


셰프의 부름에 정신없이 플레이팅 하던 손을 멈춘 맥스는 대답했다. 조나단도 그의 부름에 성급히 스테이션으로 발을 옮겼다. 저스틴은 손님이 돌려보낸 음식이 올려진 접시를 통째로 쓰레기 통에 버리며 말했다.


"감히 내 주방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손님에게 나갔다."


"네?"


아무것도 모르던 맥스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맛도 안 본 미장 플러스로 완성한 음식을 손님에게 내보낸 너희들은 감히 스스로를 요리사라고 부를 수 있겠니?"


맥스와 조나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프랩 해둔 크렘 프레쉬 꺼내."


조나단은 바트 냉장고에서 크렘 프레쉬가 담긴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꺼냈다. 저스틴은 내용물을 확인하기 전 컨테이너에 붙은 라벨을 먼저 확인했다.


휩 크렘 프레쉬 (가드망제)
10/11 만든 이 - 맥스 H


얼굴이 빨개진 맥스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어제 너무 많이 남았어서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아깝잖아요. 마감할 때 분명히 제가 맛도 봤고 괜찮아서 보관했다가 오늘 다시 써도 되는 줄 알았어요."


"남아서, 아까워서, 괜찮아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아서?"


저스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맥스의 눈에는 부끄러움과 후회를 머금은 눈물이 가득했다.


"YOU FAILED MY GUY."

(너는 실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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