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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선 Oct 11. 2024

12화 : 가드망제 - 출구는 없습니다. (1/3)

"조나단!"


멀리서 누군가 그를 불렀지만 너무나도 분명히 맥스의 목소리였다.


"네! 갈게요!"


존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뛰었다.


"하... 잠깐만... 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식은땀에 흠뻑 젖은 조나단은 숨에 헐떡인 채로 물었다.


"아니? 너 우리랑 일한 지 며칠 째냐?"


"일주일이요."


"오늘 로렌 아파서 못 온데. 알렉스는 어제부터 5일 동안 유급 휴가라 없고."


"네?"


"너랑 내가 가드망제 프랩부터 서비스까지 다 해야 한다는 말이지. 진짜 이럴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받아."


맥스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제가 평소보다 더 빨리 일 해볼게요. 해야죠."


"알아. 그냥 내가 왜 같은 돈 받고 두 명의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아직 네가 업무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도 아니고. 난 그냥 다 하기 싫은걸."


이 세상에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인생이라는 것은 신들이 펼쳐 놓은 보드게임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이 던진 힌트를 발견하느냐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생각하는 그대로 때로는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스무 살의 조나단이 바라본 인생의 묘미였다. 그 해 여름방학,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뉴욕 시티에 오로지 요리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던 그다. 알렉스가 눈앞에 놓인 상황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일 때 조나단은 바라보았다. 일주일 중 가장 바쁜 토요일 저녁, 3명이서 해왔던 업무를 2명이 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존은 기회라며 이를 악 물었다.


'해보자.'


당시 레스토랑 '르쿠'의 가드망제 메뉴는 5가지였다. 가드망제는 서비스 도중 별도의 조리를 하지 않기에 사실상 프랩해야 할 미장 플라스가 굉장히 많기도 하지만 준비 상태에 따라 그날의 서비스 흐름이 좌지우지되는 스테이션이다. 다행히도 맥스가 전날 서비스 이후 몇몇 남은 미장플라스를 냉장고에 보관해 둔 덕분에 시간적으로 그리 불가능한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가드망제 Garde Manager : 불을 쓰지 않은 차가운 음식을 만드는 스테이션. 애피타이저, 카나페를 다룸.)


"야, 시간도 없는데 그 종이 쪼가리 위에 뭘 쓰는 거야. 빨리 일해."


맥스가 존을 몰아쳤다.


"타임라인 적고 있어요. 거의 다 썼어요."


맥스의 예민함은 자꾸만 존을 조급하게 했다.


"그니까, 그게 뭐든 그만 적고 일하라고. 쉬는 시간 전까지 프랩 다 못 끝내면 어쩔 건데."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소시에 루씨와 수셰프 헨리가 멀리서 존과 맥스를 살폈다.


"그전에 못 끝낸다면 제가 안 쉬고 일할게요."


존은 그저 맥스가 신경 쓰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맥스의 불평으로 가득 찼다. 쉬는 시간 전까지 그에게 남은 시간은 90분이었다. 무조건 털어내야만 했다. 조나단은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내 쉬며 감정을 눌러냈다. 조급한 마음을 붙잡고 수첩에 적어둔 타임라인 순서대로 프랩을 시작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블랜더를 돌리며 칼질을 하고 맛을 보며 스테이션을 닦았다. 시간은 그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제멋대로 지나갔다.


"쉬는 시간까지 10분. 다들 스테이션 청소 시작해."


수셰프 헨리의 목소리에 존은 식은땀을 흘리며 수첩에 적어둔 타임라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에게 적어도 1시간은 족히 필요한 양의 프랩이 남아있었다. 맥스는 그가 원래 본인이 하던 일만을 끝내고는 청소를 시작했다.


"우리 어떡해요?"


존은 그의 감정을 꽁꽁 숨긴 채 맥스에게 물었다.


"뭘?"


"프랩이요."


존의 말에 맥스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야. 그러게 내가 타임라인 적을 시간에 일 하라고 했잖아. 난 쉴 거야. 네가 알아서 해."


맥스는 하던 청소를 마치고는 사라졌다.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맞닥뜨린 문제였다. 존에게 cdp 알렉스의 빈자리는 오지 않은 로렌 보다 컸다.


“조나단, 마무리하라고 한거 못들었어?”


헨리가 존을 향해 걸어오며 물었다.


“들었어요.”


정획히 5g씩 케비어를 작은 컨테이너에 나눠 담던 존은 잠시 멈추고 대답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엉망진창이 된 그는 차마 수셰프의 눈을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죄라도 지었어? 고개는 왜 숙여. 얼마나 남은거야?”


존은 말 없이 타임라인을 적은 수첩을 헨리에게 보여주었다.


“3시 50분까지 끝낼 수 있어? 못하겠으면 말해.”


존은 프랩 주방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 보았다. 분침은 어느새 2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40분이었다.


“네. 할 수 있어요.“


“그래. 오늘 라인업에는 참여하지말고 프랩 마무리 하고 꼭 50분까지 1층 서비스 키친으로 올라와.”


“네, 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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