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사춘기에 체하다

미처 깨지 못했던 알을 깨다.

by 체고

사춘기가 늦게 왔다. 대학 졸업 후 하고 있던 자격증 공부를 때려치우고 멍하니 밥을 먹던 2n살이었다.


대부분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중학교 시절, 난 그냥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였다. 친구들은 자꾸 오늘 엄마랑 싸웠다는데, 나에게 '혼나는' 건 있어도 '싸우는' 건 없었다. 또 어른 없이 친구들끼리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돈을 내는 것이 불편했다. 스스로 살 수 있는 건 간식이나 생일선물뿐이었다. 모두 10000원을 넘지 않았다. 그래서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어느 정도는 했는데 항상 친구들보다 어린 느낌이 들었다. 나보다 어른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 고등학교를 갔다. 거기선 그냥 공부하느라 바빴다. 그러니까 부모와 부딪히는 사춘기 없이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입시 대학을 정하면서 처음으로 엄마와 싸웠다. 그때 이미 난 그들의 자식보다 내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있으니 자꾸 부모님과 부딪혔다. 생활방식도 다르고 식습관도 다르고. 이미 나가있는 7년 동안 내 생활이 생겨버린 탓이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탓이었다. 그랬더니 근간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내가 노력했던 건 무엇이었까. 난 뭘 위해 그렇게 살아왔을까. 당신들이 없는 동안 난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렇게 살아서 이런 사람이 될 건데, 날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건가. 바꾸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의 내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런데 자꾸 중학교로 돌아간 기분에, 그 노력들이 말짱 도루묵이 된 것 같아 그렇게 힘들어했던 것이다.


그래서 알았다. 난 이미 내가 되었구나. 부모없이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삶의 속속히 기준이 생겼구나. 돈을 벌고 친구가 없어도 놀 수 있는, 나이차이가 20살 넘게 나는 사람에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아직 배울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아는 것이 없지 않은, 어느 분야는 부모보다 잘 아는 2n살의 어른. 지금의 내가 중학교 시절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부모의 말에 반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단순히 사춘기여서가 아니라 그럴 나이와 경험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 난 부모와도 싸울 수 있고(사람 대 사람, 동등의 의미) 그걸 난 늦게 온 사춘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의 늦은 사춘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저 청소년기에 못 온 사춘기일 거라 생각했고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청소년기에 이미 떨어진 부모님과 못한 것을 취준(자아 찾기)을 하면서 같이 했을 뿐이었다.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지만 이제 떠나 볼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고40.jpg 알을 깨고 나온 체고


*이번 주 금요일, '~에 체하다' 시리즈 마지막 편 '꿈에 체하다'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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