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체하다

환히 빛나는, 너무나도 먼

by 체고

오늘날 돈은 작고 큰 꿈들을 이뤄줄 수 있다. 자라면서 보고 들은 것으로 작고 큰 꿈들을 품었지만 언제나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직업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전까지 다른 꿈은 별로 이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니, 여유가 없다. 안정되어야 시작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꿈에 체한 지 얼마나 되었다면, '꿈을 가진 순간부터 아직 이루지 못한 지금까지'라고 할 수 있다. 유치원시절부터 물어보는 '커서 뭐 될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한 직업으로 정착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숨이 막힌다.


포기하고 싶다. 당장이라도 그만큼의 먹고 살 기준이 충족되고 다른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면 미련 없이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과 함께 돌고 돌아 이 꿈을 품었던 지난날을 생각한다. 심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나에게 주어진 최선의 것, 그만큼 오래 품어온 꿈이 이제 날 바라보고 있다. "정말 안 할 거야?"


그 꿈을 애증 한다. 참으로 이루고 싶으면서도 그 길이 쉽지 않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 깊고 큰 외침을 지르고 있는 내가 보인다. 이래서 간절하면 안 된다고. 그 꿈과 관련되지 않는 것들은 다시 너무나도 쉬워 보이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고, 다 어려워 보이는 세상 속 걸어왔던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분명 한 단계씩 나아가는 순간이 있었다. 내 직업꿈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필수였는데 수능을 보기 전 수시지원한 대학들 중 반이 불합격통보를 줬다. 수능도 보고 다 포기하고 있을 때 한 대학에서 합격소식이 왔다. 가고 싶던 곳이었다.


이러한 행보가 더 발목을 잡는다. 대학을 왔는데 다른걸 왜 못하나 싶어서. 근데 대학 가려고 정말 많은 마음고생을 했었다.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매일 잠이 왔고 매일 죽고 싶었고 사라지고 싶었고 놀고 싶었다. 학교는 운동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밤 산책 30분도 아까워했다. 나 참, 어떻게 살으란 건지. 난 애매하게 말 잘 듣는 학생이었으니까 또 따로 움직이지 못했다. 계속 앉아있고 엎드려 자고 그랬다. 근육이 다 빠진 잠만 자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꿈을 이루려면 그런 시험이 한 번 더 남았는데, 그런 생활을 또 하라니, 가혹하다.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있는데 그렇게 이뤄야 하는 꿈이라면 안 이루는 게 맞지 않나.


시험 준비를 하지 않은 날은 쉬었음 청년이 되었다. 딱히 쉬고 싶진 않았는데 쉬니까 몸은 편하더라. 근데 그게 건강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다가 또 '죽어도 좋으니 해보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다 또 '죽을 거면 왜 해.' 할 것 같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2026년의 2월

과연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살면서 널 이룰 순 있을까?

고42.jpg 환히 빛나는, 너무나도 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