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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Jan 07. 2020

행운이 칠십 퍼센트라면

1997년 겨울이었다. 

외삼촌은 흙 수저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사업 실력으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당시 이미 상당한 자산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외삼촌이 부산 광안리에 호프집을 개업하기 전 날 밤이었다. 외삼촌은 개업을 앞두고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맥주를 한 잔 따라주며 물었다. 


“가게 분위기 어때? 장사 잘 될 것 같아?”


나는 그냥 의례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외삼촌은 사업 운이 좋으니 이번에도 성공하시겠죠”


외삼촌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짜증 섞인 어투로 나를 꾸짖었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 왜 생각이 그 딴 식이야? 사업 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운이 좋아서 성공한다고? 세상에 운이 어디 있어? 노력을 했으니까 성공하는 거지”


사실 “외삼촌은 사업 운이 좋다”는 표현은 머릿속에서 깊이 생각하고 나온 말은 아니었다. 주변 친지들이 부자 외삼촌을 언급할 때면 항상 “사업 운”을 이야기했고 어릴 때부터 그 말을 듣고 자랐던 나는 외삼촌 하면 떠 오르던 익숙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내뱉었을 뿐이었다.  


외삼촌은 자수성가 한 사람들이 의례 그렇듯이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대화를 하기에 무척 피곤한 유형이었다. 가령 누가 어떤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왜 안되냐고 꼭 따져 물었다. 적어도 본인이 해보고 안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그의 앞에서 안된다, 어렵다, 못하겠다는 말은 절대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외삼촌의 이미지는 꼰대 그 자체였고 그의 잔소리는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야 할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날밤 가게가 성공할지 말지 판단의 근거를 운으로 여기는 나를 심하게 꾸짖었던 외삼촌의 잔소리는 도무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공의 원인은 운이 아니라 노력이다. 설사 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 운 마저 노력의 산물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극도로 바람직한 말이었고 이 말은 꽤나 오랫동안 나의 일상과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아마도 내 눈앞에 존재하던 외삼촌과 그의 화려한 성공이 실체적 증거였기에 더 무겁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평균 수명이 80살이라면 이미 인생의 절반을 훌쩍 지나버린 요즘, 인생에서 운은 무엇이고 노력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의 내 노력에 비례하는 결과일까 아니면 특정 시점마다 선택한 결과의 합산물인가? 친한 친구는 몇 년 전에 수도권의 신도시로 이사 갔을 때 아파트를 사지 않고 전세로 들어간 일을 지금도 땅을 치며 후회한다. 전세 계약이 끝났을 때 처음 시세보다 5억이 올랐다는 것이다. 친구가 집을 사지 않았던 이유는 집을 사기에는 가진 돈이 적었고 집 값이 오를지 확신할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평생 빚을 내 본 적이 없었기에 매월 납입해야 하는 이자가 무서웠다고 했다. 


그때 친구에게 부족했던 것은 집을 사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 돈, 집 값 상승을 전망할 수 있는 정보, 과감히 대출을 감행하는 배짱이었지만 내가 옆에서 보기에 셋 중 가장 부족했던 것은 집 값이 오르기까지 몇 년간의 대출 이자를 떠안는 과감한 결단이었다. 집을 사기 위해 목돈을 마련하는 일과 주택 가격 시세를 전망하는 일은 노력의 영역이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심의 부족은 친구의 타고난 성품이다. 공무원이라 대출받는 것도 문제없었고 똑똑한 부인이 집 값이 오를 것이라고 옆에서 장담을 했지만 결국 친구는 집을 사지 않았다. 친구가 몇 억의 재산 증식 기회를 놓쳐 버린 원인은 노력과는 거리가 멀다. 비단 친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역시도 노력과 상관없는 단순한 선택의 기로에서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으로 제법 기회를 잃었다. 


인생을 살아보니 외삼촌의 말은 틀렸다고 무슨 대단한 진리를 발견한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니다. 단지 측정할 수 있는 노력과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 어떤 우연의 영역이 서로 무질서하게 얽히면서 우리의 인생 항로가 결정되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은 가만히 보면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일단 최선을 다하자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고 때로는 어차피 운이 70%인데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냉소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이 말을 수긍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조금씩 늘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겪었을 테니 좌절감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고 인생에서 우연이라는 요소의 중요성을 실제로 많이 경험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흥미로운 지점은 운이 70%라고 규정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무슨 과학 논문도 아니고 70%라는 숫자의 유의미성을 따지는 일은 어리석지만 적어도 운이 노력과 동등한 지위는 아니며 그렇다고 조금 더 나은 60%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력을 완전히 압도할 만큼의 80%나 90%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을 만든 청나라 시대의 작가는 운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적어도 노력보다 꽤 많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냈고 이 말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된 것도 이 70%라는 비율에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 운과 노력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면 두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두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인생을 결정지어 나가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누가 더 크게 작용하는지 까지는 모르겠다는 것. 두 번째는 노력과 운 중 하나의 요소만으로도 어떤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학적으로는 일 년 동안 매주 복권을 사는 사람은 일 년에 딱 한번 복권을 사는 사람보다 당첨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절대적인 확률에서는 두 행위가 별반 차이가 없다. 복권을 매주 사는 노력은 당첨이라는 결과에 거의 기여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전적으로 노력만으로, 아니면 운 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개인적으로 별로 흥미롭지 않다. 대개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세속적인 관점으로만 따졌을 때 기대 수익이 별로 크지 않고(물론 작은 노력의 결과물이 계속 쌓여 가는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운 만이 작용하는 결과는 어차피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항상 궁금하다. 인생을 자동차 운전으로 비유하면 나에겐 노력이라는 오른손과 운이라는 왼손이 있고 우리는 양손을 함께 사용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설사 운이 70%가 아니라 반대로 30%라고 해도 나에게 양손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외삼촌의 광안리 호프집은 1년을 못 채우고 결국 장사가 안돼 가게를 접었다. 외삼촌은 호프집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프집은 빛의 속도로 망해버렸다. 하지만 외삼촌은 그 뒤 다른 장사로 다시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삼촌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었다. 무슨 이유로 그 호프집은 망했고 다음번 장사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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