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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May 17. 2020

행운이 자주 오지 않아 다행이다.

행운이 없는 평범한 일상을 즐기자 

A는 유럽으로 출장 가기 전에 로또 복권을 샀다. 생각보다 공항버스 정류장에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았고 특별한 기대 없이 자동 번호 선택으로 복권을 한 장 구입하고 그대로 지갑 속에 넣고 잊어버렸다. 유럽에서는 바쁜 업무로 순식간에 주말이 지나갔고 녹초가 된 몸으로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A는 유럽으로 오기 전에 구입한 복권이 생각났다. 바로 번호를 확인해 보니 당첨이었다. 상금이 무려 30억 원. 


A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멍한 상태로 있다가 인터넷으로 세금을 얼마나 떼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귀국한 다음날 바로 회사를 때려치우겠다고 결심하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A가 탄 비행기는 이륙한 지 1시간 만에 엔진 고장으로 알프스 산맥 어느 봉우리에 추락했고 A는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자주 발생하지 않는 좋은 일이 나에게 생겼을 때 우리는 행운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불운이라고 표현한다. 행운과 불운의 본질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자주가 아니라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복권을 샀을 때 1등에 당첨되는 일은 거의 없고 비행기를 탔을 때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을 확률도 희박하다. 그렇지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혹시나 싶어 복권을 사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추락 사고를 상상한다. 사람들이 의외로 희박한 확률을 잘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또 복권 1등 당첨 확률은 8,145,060분의 1(약 0.00001%)이지만 잘 실감하지 못한다. 이 확률은 잠실 야구장 좌석 수가 25,553명이므로 잠실 야구장 319개에 사람들이 꽉 차있고 그중에서 추첨으로 나 혼자 뽑히는 상황이다.  


비행기 사고는 2015년 세계 기준으로 100만 운항 당 3.2건(0.0003%)이다. 역시 잠실 야구장 사례로 바꾸면 잠실 야구장 12개에 가득 찬 사람 중에서 내가 뽑힐 확률이다. 로또에 비해 야구장 수가 확 줄어 확률이 크게 느껴지는 착시효과가 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상상해 보자. 잠실 야구장 12개에 가득 모인 사람 중에 추첨을 통해 나 혼자 뽑힐 확률을. 



여러 번 반복하면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복권을 사거나 비행기를 타는 일은 잠실 야구장에서 어제 뽑힌 사람이 오늘도 추첨에 참가하는 상황과 같기 때문에 확률 계산의 분모가 같아서 매번 시도할 때마다 확률은 동일하다.  


이처럼 행운이 잘 오지 않듯이 불운도 잘 오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A처럼 로또 1등에 당첨될 일도 없으니 아쉬워할 필요가 없고 비행기 사고로 죽을 일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소소한 행운이나 불운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한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동물의 새끼들은 동물에 따라 생후 1개월 동안의 생존율이 10~50%라고 한다. 최상위 포식자 사자 새끼들 마저 생존율이 아주 좋아야 50% 정도라서 톰슨가젤이나 임팔라 같은 초식 동물들은 비참할 지경이다. 죽음보다 더한 불운이 세상에 없다면 아프리카 동물에게 불운은 일상이다. 인생을 살면서 왜 행운이 오지 않냐고 아쉬워하기 전에 불운이 닥칠 확률도 그렇게 낮다는 사실에 먼저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복권을 샀는데 숫자 하나도 맞추지 못할 때 생각한다. 

'그래. 복권에 당첨되기 어려운 만큼 내 인생에 불행도 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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