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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Sep 20. 2020

노력과 성공의 독립적 관계

독립이란 두 개의 현상 사이에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성공은 노력과 독립적이다.  

다분히 도발적인 느낌의 제목을 단 이유는 성공과 노력의 상관 관계에 대한 신화가 너무 단단해서 조금이라도 균열을 만들어 내고 싶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노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성공하려면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한평생을 노력하며 살다 간 사람들은 너무 많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오직 소수만이 성공의 단맛을 보았다. 

똑같이 노력해도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할까? 사실 우리 주변의 생생한 현실을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대개 부모의 재력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출발선이 다르니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대 행운이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니 이 요인은 제거하자.  


그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노력했지만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할까?

이제부터는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내가 볼 때, 부모의 재력 다음으로 중요한 요인은 실력과 외모다. 실력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여도 외모라는 말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인정하기에 약간 찜찜한 구석이 있어도 엄연한 사실이다. 외모와 소득의 비례 관계를 조사한 연구 결과들은 제법 많다. 굳이 조사를 안 해도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가?  


나의 외모에 내 의지는 1밀리그램도 반영되지 않았으니 이것도 운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실력은 어떤가? 실력이야 말로 노력의 산물 아닌가? 그렇다. 노력하면 실력을 기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착시 현상이 하나 있다. 


실력에는 성공 여부를 가르는 임계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A는 100미터를 13초에 뛰고 B는 12초에 뛴다면 B는 A보다 실력이 높지만 어차피 A, B 모두 100미터 달리기로 성공하기엔 글렀다. 어떤 분야에서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성공하려면 경쟁자를 압도하는 우월함이 있어야 한다.  100미터쯤은 8초 이내로 뛰어줘야 한다. 이런 압도적인 실력은 다분히 유전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이것도 어떻게 보면 또 운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유전적 성격의 행운이 인생의 성공에 너무 많이 관여하는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인생은 허무할 것이고 삶에 의욕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러나 낙심하기엔 이르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성공이 존재하고 부모의 재력, 실력, 외모로 이 성공을 입도선매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아주 적다. 부모의 재력과 실력, 외모를 유전적인 행운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요인들은 눈에 보인다. 왜 그들이 성공했는지 근거를 이런 이유들과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선천적인 조건은 성공과 독립적이지 않다. 세상에는 여전히 선천적인 조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공이 많다. 과학에서는 이렇게 측정할 수 없는 원인이나 결과의 차이를 에러라고 규정하고 일단 판단을 유보시킨다.  


선천적인 조건을 모두 제거하고 또 생각해 보자. 

평범한 가정환경에, 평범한 실력에, 평범한 외모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다면 그 요인은 무엇일까? 노력? 이미 말했다.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성실성? 노력과 비슷한 의미다. 성격? 이건 선천적인 조건이지만 후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자기 계발서의 단골 주제이긴 하다. 하지만 노력과 마찬가지로 성격 좋다고 다 성공하지 않는다. 


이제 내 생각을 말할 때다. 내가 유력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황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란 로또 복권에 걸리거나 나의 배우자가 재벌가 자녀라든가 이런 상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은 이미 그 자체가 성공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상황이다. 내일 갑자기 전쟁이 터진다. 전쟁 자체는 나를 성공하게 만들지 실패로 이끌지 결정할 권능이 없다. 그냥 나의 반응에 따라 수 만 가지 시나리오를 파생시킬 뿐이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는 반응한다. 이 반응을 행동이라고 하자. 행동은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켜 결국에는 나에게 성공을 선물하거나 실패를 경험하게 하거나 아니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다. 


상황을 다른 말로 기회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기회는 중립적이지 않다. 그 자체에 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내가 말하는 상황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발점이지만 개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으로 작용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조건의 변화를 의미한다.  1950년에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어떤 사람의 성공에 긍정적이었을까 부정적이었을까? 개개인에게 전쟁으로 인한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은 다른 모든 요인들, 즉 성격이나 노력, 그리고 약간의 실력 같은 것들에게 한계를 부여한다.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이런 요인들은 상황에 구속되기 때문에 상황의 힘은 엄청나다.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한 육상 선수도 코로나로 올림픽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노력과 실력은 무용지물이다.  


상황은 선천적인 조건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어떤 상황이 나에게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상황이야 말로 전적으로 우연의 영역이다. 허망한 결론이지만 우연스럽게 만들어진 상황이 성공과 그 나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우연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행동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어떤 사람은 성실하게 하던 일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큰 결정을 내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대중이 예상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 


그중에서 어쨌든 소수의 사람들이 성공한다.  그들은 왜 성공했는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갈 뿐이다. 당연히 사람마다 하는 말이 다르거나, 공통 원리를 추출할 수 없거나 심지어는 모순적인 주장이 나온다.  당장 시중에 나온 자기 계발서를 다 대조해 보자. 차마 과학이라는 단어는 쓰지 못하고 무슨 무슨 법칙이라는 말로 성공의 이유를 나열하지만 전제 조건인 상황이 다르다 보니 주장하는 바도 제각각인 것이다. 


지금까지 주관성이 강한 주장을 했으니 한 연구자의 도움을 슬쩍 빌리면서 글을 마치는 것이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심리학자 폴 피프(Paul Piff)는 돈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했다. 두 명의 참가자는 모노폴리 게임(브루마불과 비슷한 게임)을 했는데 무작위로 선택된 한쪽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규칙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게임을 해봤자 유리한 규칙을 적용받는 사람의 승리는 뻔한 결과였다. 


폴 피프는 실험에서 유리한 규칙으로 승리하는 사람의 행동과 심리 변화를 관찰하고자 했다. 게임이 끝난 후 승리한 사람에게 소감을 물었을 때, 그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어떻게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돈을 투자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물론 그들이 승리한 진짜 이유는 딱 하나, 무작위 선택으로 유리한 규칙을 적용받는 것임에도 말이다.  


참고 : https://www.ted.com/talks/paul_piff_does_money_make_you_mean?language=ko#t-257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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