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여행'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유사하지만, 근래에 우리가 느끼는 두 단어, '관광'과 '여행'의 느낌은 꽤 다르다. '관광 보낸다. 관광시키다.' 등등 원래의 뜻과는 다른 의도로 '관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변용적 사례가 많았기 때문인 듯도 하다.
'제주관광'이라는 표현도, 이 다양한 가치를 가진 경험을, 다소 가볍게 어떤 면에서는 부정적 느낌까지 가져오는 듯하기에, '제주'를 방문한다는 것을 이제는 '여행'이라는 용어와 개념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바꾸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여행'에 초점을 맞춰보면,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그리고 나는 위와 같은 정의의 여행이란 '쉼'과 '회복', '배움'과 '돌아봄'이 모두 가능한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쉼과 회복을 얻고, 새로운 장소와 상황,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며, 이런 경험과 배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을 너무 평면적으로 ‘관광객’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하여, 앞으로 우리 제주를 찾는 분들을 나는 단순'관광객'이 아닌, '여행자'로서 제주 도민의 삶에 다녀가는 '귀인'이자, '동반자'로 생각해 보고 싶다.
약 20여 년 전, 26살 때, '영국'을 '배낭여행'이라는 방식으로, 2박 3일 동안 다녀왔다. 참 언급하기도 멋쩍은 단 48시간의 경험이었건만, 지금도 그 순간을 값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대영제국이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담해 보였던 ‘버킹엄 궁전’과 흐린 하늘 아래서도 매우 선명해 보였던, ‘세인트 폴 성당’. 단순한 경험을 넘어 그 시절 첫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 그곳에서 느꼈던 맛과 냄새, 감촉.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겨줬던 익숙한 신발들. 그 시절 전체가 ‘영국’이라는 ‘책갈피’를 찾아 펼치기만 해도 떠오르는 느낌이다. 내 인생에 '영국'이라는 꽤 젊고 신선했던 '세이브 포인트'를 하나 갖게 되었다.
'제주'라는 공간도 단순하게 먹고 즐긴 후, 돌아볼 것 없이 떠나버리는 '관광지'가 아니라, 누구나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여행지'로 추억되었으면 한다. “여행이 뭐 큰 가치가 있어? 쉬고 노는 거랑 뭐가 달라?” 자문해 봤다. 그리고, "그럼 가치를 진정 인정받은 여행(?)은 어디 없을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정조 4년, 1780년, 약 5개월)다.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칠순 잔치)을 축하하기 위해 다녀오며 보고 느낀 것들을 적어놓은 기행문, 열하일기. 그저 ‘출장 및 연수'를 다녀온 결과보고서, 혹은 단순한 '수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학자가 지금까지도 연구하고 있는 역사적 기록이 되었다. 그 ’개인‘에게는 청나라 황제의 생일잔치에 다녀온 것이 특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행'이 수백 년 동안 전해져, 조선을 넘어, 지금 한국에서까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사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을 텐데…. '여행'이 개인을 넘어, 한 사회와 시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여러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제주에 온다. 모두가 인생의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갈 소중한 ‘여행자’일 것이다. 평생 기억될 쉼과 배움, 삶을 반추해 볼 기회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반겨주고, 안아주고, 인사해 주자. 그러면 그들도 우리에게 ‘인연’이라는 선물을 나눠주겠지. 이렇게 만들어진 ‘나눔의 추억’은 각자 간직하자. 서로가 주고받은 '추억'이라는 선물을 언제든 돌아와 다시 나누고 싶은 여행자들이 많아지기를…. '제주'가 그들의 쉼과 회복, 배움과 돌아봄의 ‘시작이자 고향’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반기고. 안아주고, 인사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