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봉우리에서의 감격
학위가 아니라 지식을 필요로 하여 행하는 공부는 실로 즐겁다. 어떤 분야에 뛰어들어 오로지 그에 속한 대가들의 시각과 행적만을 기점으로 취하여 세상만사를 문제 삼아 나가기 시작한다. 그저 먹고 자고 술담배나 하며 돼지같이 살던 삶에 착착 기름이 끼얹어지고 횃불이 닿더니 순식간에 거센 섬광을 발하며 활활 타오른다. 맹목적 소비와 지리멸렬한 심신의 소모는 창조의 손길에 구원받아 새로운 힘으로 충만해진다. 이 철저히 압도되는 쾌감, 영원히 죽되 그때마다 어김없이 다시 태어나는 삶의 환희. 나의 존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한 정신에 온통 두들겨 맞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는 파도 되고 나는 나룻배 되어. 그는 작렬하는 태양 되고 나는 지고지순한 해바라기 되어. 가진 전부를 맡긴 채 여념 없이 흘러갈 뿐이다. 이를 위해 내가 태어났으며, 이를 위해 내가 살아야 한다.
결코 외관으로 사람을 평하지 말며 다만 가슴의 넉넉한 그릇과 세상을 향해 내뿜는 웅혼한 의지만으로 그 숨쉼의 값어치를 매김할지니. 세인들이 흔히 거슬러 오를 수 없다 말하는 시간의 폭포를 꿰뚫어보고 한 순간의 빈틈을 노려 단숨에 눈여겨보던 시대의 상을 매의 발톱처럼 낚아챈다. 거룩한 예술의 사당으로 돌아와 오만한 눈빛으로 사냥감을 내려다보며 쪼개고 발라 해체해간다. 이것이 모든 문학의 요체요, 대개의 예술가가 함유해야 할 기개이자 패기이다.
펜과 칼 중 무엇이 더 강한가? 문필과 무력 중 무엇이 더 귀한가?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경우를 논할 때보다도 정확한 인식과 구분이 필요하다. 핵심은 얼마만큼의 규모로, 얼마만큼의 길이와 너비로 세상을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느냐이다. 시대의 단면을 횡(橫)으로 잘라 폭파시키는 데에는 총검만한 것이 없다. 낡은 현실을 단숨에 때려부수고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공학이 단연 제일이다. 그러나 역사를 유유히 종(縱)으로 내려다보며 씨앗을 심는 데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무엇도 문학의 힘을 따르지 못한다. 글은 씨앗인 동시에 새싹이요, 새싹인 동시에 줄기요, 줄기인 동시에 꽃이다. 한때의 씨앗이 울창한 숲이 되고, 숲이 완성되었을 쯤에는 이미 그 꼭대기 위에 새로운 씨앗이 자라고 있다. 쌓이고 또 누적됨으로써 과거를 논평하고 현실을 애태우며 미래를 지배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하여서, 오직 그렇게 하여서만 인간은 살아남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