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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l Jan 21. 2022

내 인생 구조 이해하기

사랑의 매란 없다.

 번째 기억.


모두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부모님이 일로 늘 바쁘셨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동생과 함께 티비를 보며 기다리곤 했다.



현관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엄마,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기 전에 나는 아빠의 발길질에 채어 쇼파 아래쪽으로 나가떨어진다.


‘아빠가 현관문 꼭 잠가두라고 했지! 몇 번을 말해!? 맞아야 말을 듣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울기 시작한다.




두 번째 기억.


나 혼자 화장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고 있다.


별안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내 등짝에 찰싹 소리가 들린다.


왜 혼이 났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그 사안이 머리를 감고 있는 채로 혼날 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 번째 기억.


사촌 언니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당시 유행하던 크레이지아케이드란 게임을


컴퓨터 앞에 언니와 나란히 앉아 몰입해 있었다.



아빠가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하셨나 보다.


나는 집중하면 다른 소리는 못 듣는 초몰입형 스타일이다.


게임을 하다가 아빠의 강력한 발길질에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가족 모두가 보고 있었고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이내 눈물을 질질 짜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한테 신체적 폭력을 당했을 때마다


나는 그저 방에 가서 한참을 울었고 엄마는 조용히 들어오셔서


아무 말 없이 위로해 주셨다.



확실히 그렇게 한 번 맞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조심하게 돼서


나는 아빠의 맞을만하니 맞았다는 말이 맞는 말인 줄 알았다.



그리고 17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6개월 만에 엄마, 아빠가 나를 보러 미국에 오셨었다.




아빠는 어렸을 때 내게 순간적으로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을 썼다며 눈물을 보이시며 사과하셨다.


그때의 내 표정,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며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시다며 말이다.



17살 사과를 받은 내 심경은 무덤덤했다.


가정 안에 이뤄진 폭력이라 나는 그 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아빠가 그래도 나를 사랑한다고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되려 사과하는 아빠의 모습에 의아했다.




그리고 한참 후, 나도 부모가 되었다.


꿈도 직업도 없고 잠은 부족하고 자존감이 한참 바닥이던 때,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만 사라진 것 같았던 때,


너무 소중하고 예쁜 아이를 보며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때,


아이는 종종 본인의 힘 조절에 실패하며 내 얼굴을 때렸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같이 아이를 세게 때렸다.



그리고 이내 후회하고 아이에게 사과했지만


같은 일은 수차례 반복됐다.


나는 누군가 내게 신체적 아픔을 가하면


알 수 없는 분노감에 휩싸인다는 걸 인지했다.



신혼 초반에 남편이 귀엽다며 내 머리를 툭 치곤 했는데


불같이 화를 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나는 나를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걸 풀고 가지 못하면 나 또한 아이에게 몇 년이 흘러


눈물을 흘리며 사과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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