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렇게 시월을 시작한다. 가을은 이렇게 바빠야 하고.
A. "꿈이 무엇인가요?" 라고 물으면 대통령이 되고싶다는 거창한 답이나 명문대, 굴지의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건 굉장히 상투적인 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나의 꿈을 굉장히 소박하고 단촐하다. 그러나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바로, '칼퇴'.
9시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포함한 휴식시간 1시간, 그리고 6시가 되면 컴퓨터를 끄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여섯시 이후 부터는 내가 휴식을 취할 지, 운동을 할 지, 공부를 더 할지 마음대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삶. 이제는 초연히 자연으로 돌아간 한 정치인의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 왜 이렇게 꿈같지?
A. 지금 하는 일은 PCO(Professional Conference Organizer, 국제회의전문가로 역.)다. 그리고 나는 행사 하나를 열흘 , 또 하나를 한달 조금 넘게 남겨뒀다. 쏟아지는 현장 일정과 현수막을 포함한 현장제작물 하나하나를 점검해야한다. 임박할 수록 자잘한 일은 늘어나고, 변화는 빠르다. 일정은 빠듯하고. 사실 미칠 일이다. 내가 연차가 더 쌓이면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을까 아직 1년차인 나는 모든 것이 서툴다.
A. 아버지가 서른 해 넘는 기간동안 은행에 계셨다. 네 시면 은행이 다 끝날 줄 알고 한참을 아버지를 기다렸는데 아버지는 꽤 오랜시간동안 일찍 퇴근하지 못하셨다. 셔터를 닫는 순간 일은 시작된다고. 어느정도 아버지를 공감할 수 있게 됐다. 워킹아워동안엔 온갖 문의가 많이 오기 때문에 전화나 미팅을 하다보면 실제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진다. 때문에 밤 늦게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내가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이다. 저녁 먹고 잠깐 쉬는 시간. 근데 이것도 잠깐이다. 젊은 날엔 바빠야한다. 특히 업무 특성상, 가을엔 더 바빠야하고. 물 들어올때 노 젓는 법이니까.
A. 일을 해보니, 업무에는 정해진 진도가 없는 것 같다. 협력업체를 포함해서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진 않는다. 그걸 인정하기 까지가 오래걸리는 것 같다. 손이 빠르면 금방하고 갈 수 있는 것 같고.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있다. 행사가 끝나는 순간. 그러면 끝나겠지.
A. 그러게. 사실 과외를 포함해 꽤 많은 일을 했던 것 같은데 계속 찾아와보니 어느덧 PCO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이 일이 좋다. 아무것도 없던 전시장이나 회의장에 포디움이 세워지고, 현수막이 걸리고 관중이 차고 그 자리에 중요한 연사들이 서고. 그런 것들이 설렌다. 내가 이렇게 상을 잘차렸으니 마음껏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장을 보고 상을 차리는 일이고되서 그렇지 왜 자식 잘 먹는 것 보면 흐뭇해지는 부모 마음이랄까.
A. 감사. 이제 제작물 오탈자를 봐내야한다. 내년에 들어갈 행사의 CFP도 만들어야하고. 내 눈에 신의 가호를. 이것만 하고 집에 갈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