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아 이래놓고 또 아니라고 할 거 잖아요.
길티플레저를 고백할까 한다. 저스틴 비버를 좋아한다. 내 플레이리스트엔 언제나 저스틴 비버 노래가 적어도 3곡 정도는 포함된다. 이게 왜 부끄러운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난 좋아한다. 얼마전 발매한 싱글 <What do you mean?> 은 그 중에서도 내 취향을 저격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색안경을 벗고 들어보면 노래는 참 좋다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DK_0jXPuIr0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연인의 이중언어를 파악하고자 하는 가련한 상대의 마음이 녹아있는 노래랄까. 나도 요즘 딱 이 마음이다. "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뭘 하고 싶은 걸까?"
행사를 하다보면 주관사와 조직위, 대행사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행사에는 작은 의견 대립은 있기 마련이고 그걸 조정해나가면서 행사는 진행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관사와 조직위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행사의 주인은 그들이고, 그 의도를 해쳐선 안된다.
그런데 가끔. - 이라 쓰고 꽤 빈번하다 읽는다.- 결정이 번복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포스터 폰트의 크기라던가, 위치, 색,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휙휙 바꾸는 경우! 아 미칠 지경이지. 또 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히 어제는 주황색이 좋댔다가 오늘은 파란색이 좋댄다. 디자이너는 짜증을 낸다. 프로그래머는 잦은 번복에 지쳐 실수를 낸다. 아 주여 이 어린양을 얼른 거두어 가주십시오. 머나먼 천국으로 떠나고 싶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인 '나비효과'처럼 조직위의 작은 결정 번복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당장 행사 A를 영업일 기준으로 열흘이 남았다고 가정하자. 열흘이 남았으면 현수막을 포함한 현장 제작물, 프로그램 북, 팸플릿, 프로시딩 매체들은 마감을 향해 달려가고 모든 데이터들에 대하여 오탈자 정도만 봐내는 작업들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없던 내용을 추가하라거나, 구성을 바꾸라고 한다면. 과감하게 페이지 구성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PCO가 텍스트를 열심히 다듬어서 디자인 업체, 인쇄 업체, 프로그래머들에게 나눠주면 그들은 내가 넘겨주는 걸 기다렸다가 다시 작업을 한다. 그럼 당연히? 야근과 친해지고 밤을 새기도 일쑤겠지. 일을 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수많은 동료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행사를 하다보면 가장 중요한 사람은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이다. 제대로 결정을 해주지 않으면 흐지부지 일정은 늘어지게 된다. 그래서 인격이 훌륭하시고 모든 의견을 수렴해주시는 분들도 참 반갑지만, 과감하게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 말해주시는 분을 더 선호하게 된다. 내가 바쁠때는 그 칼같음을 지키기가 어려울 때도 많지만, 일하기엔 '칼같은 사람'과 하는게 훨씬 좋다. 일정이 지나도 받아주는 '넉넉한 정' 이 없는 사람이 훨씬 더 좋고. 그런데 이럴 경우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좋아야 한다. 사실 딱 깨놓고 말해서 그랬을 때 결과물이 더 좋을 수 밖에 없다. 미리 준비하고, 빨리 결정하고 순간마다 보고와 수정을 거쳐 진행하는 것이니 여유롭게 양질의 결과물을 낳는다.
내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니다. 도와주시는 협력업체 디자이너 분들, 프로그래머 분들도 함께 땀흘린 공동의 결과물이다. 산고를 겪는 와중에도 '내 새끼'를 예쁘게, 멋지게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은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일정에 쫓기면 그 욕심을 버려야 할 때가 온다. 그럴 때는 "안된다고 하세요. 원칙대로 하세요." 란 말이 참 정 없어 보일 수 있어도 일을 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참 반가운 말이다.
우리 사무실은 10월 행사를 앞두고 거의 대부분의 작업물들이 마감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성대한 행사장의 잔칫상을 위해 지겨우리만큼 의자에 앉아서 하는 paper work의 중요성들을 알아주었으면. 또 보이는 결과물 뒤에 많은 사람들의 땀과 숨결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손바닥 뒤집듯 결정을 내리진 않을 것이다.
그것까지도 다 좋다. 뭘 원하는 지 명확하게 말씀 좀.. 부탁합니다. 과도한 밀당은 서로 힘들기만 할 뿐이잖아요.
글과 별개로 추천곡. Skrillex and Diplo - "Where Are Ü Now" with Justin Bieber (https://www.youtube.com/watch?v=nntGTK2Fh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