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그러니, 계속 내 곁에 있어주세요.
"엄마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구요. 내가 더 자랑스러워질거야 아마."
의기양양하게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진실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또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엄마에게 떠들었다.
무엇때문이었을까? 내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실 잘 사는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 업무에 시달렸고, 결과적으로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 늘 마음을 졸였다. 매일 복잡해진 머리를 안고 잠을 설쳤다. 내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매일의 루틴- 운동, 스킨케어, 현상유지에 불과한 언어 공부- 들은 그냥 불안함을 모면하기 위한 어떤 의식들에 불과했다. 그리고 매일을 마무리 할 때 덮어놓고 '나는 잘 될거야. 늘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거야.' 라며 되새겨왔다. 행복한 나날과는 거리가 멀었다.
딸. 엄마한테 자랑스러워지려 하지말고 네가 행복하게 살아.
400KM를 뛰어넘는 엄마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온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울어버렸다.
짧은 연휴를 맞아 본가에 다녀왔다. 집에 오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시간을 보낸다. 바로 엄마랑 동생이랑 보내는 수다 타임이다. 매일 통화를 하지만 다 말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집에 올 때마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꼭 가지려고 했다. 사실 나와 동생의 성토자리에 가깝긴 했다. 우리 자매는 각자가 가진 가장 큰 문제들을 엄마와 나눴다. 엉망진창인 직장생활과 학교 생활, 재수없는 거래처 직원, 짜증나는 조원, 사랑스럽지만 가끔 날 서운하게 하는 우리의 남자친구 얘기 등등 그 에피소드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엄마와 대화를 하면 너무 좋은게 엄마는 내가 조언을 구하기 전까지는 어떤 주관적인 말도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부모님이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과 다른 점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큰 딸은 성과에 집착하는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사실 두 분은 우리 자매를 자유롭게 양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일단 우리의 학업성적이라던가, 취업과 같은 성과에 있어서는 어떤 평가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최고의 성적을 받았던 날에도, 수학점수를 40점밖에 못받았던 날에도 그냥 '그래, 애썼다.' 라는 말이 전부였다. 물론 잔소리를 하시긴 한다. 청소를 잘 하고 살라거나, 식사를 잘 챙겨라, 운동을 빠지지 않고 하라는 것 같은 말들 말이다. 그런 것들을 제외하곤 모든 결정은 항상 스스로 하도록 하셨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은 상당히 고단했다. 결정엔 언제나 책임이 따랐다는 걸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히 지혜롭지 못했기에 시행착오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좌절감을 느끼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라던가 '나는 다 잘될거야. 나는 다 이뤄낼 수 있어' 라는 것을 주문처럼 외고 살았다. 그렇게 씩씩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말한 것처럼 다 이뤄낼 수 있을 거라 믿고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주문같은 말들 속에서 난 외로웠고 혼자 있는 시간은 공허했다. 학생 때는 나름대로 잘 처리할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사회생활은 정말 쉽지가 않으니 혼자 끙끙 앓았다. 내가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앓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냥 잘 해내고 싶었다.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이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쉽게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 같다. '좌절하지 않는 이 시대의 청년', '능력있는 커리어우먼' 같은 이미지! 얼마나 멋있고 폼나는가 말이다! 이건 성격탓이 분명할 거다. 그렇게 몰아붙이기만 했으니 몸도 마음도 상할 수 밖에 없었겠지.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내 불만은 바로 그거였다. 분명히 내가 원하는 일도 마음껏 하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포함해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있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그건 내 감정에 솔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내가 좌절을 한다고 해서, 실패를 해서 넘어진다고, 외롭다 느낀다 해서 그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아닌 거 같다고 하셨다. 이제까지 나는 외롭고 슬퍼질 때면 '내가 무슨 이런 생각을 하지? 우울함이라니 있을 수 없어! 행복한 생각을 해야만해! 힘을 내고 밝게 생활해야해!' 라는 생각을 하며 다잡았다.
"우울한 너도 너고, 좌절하는 너도 너 자신이야. 즐거운 너, 잘하는 너의 단면만 인정해주면 나머지 부분들은 무시해버리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나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거 잖니."
내가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안의 감정의 변화를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듣고나니 나를 괴롭히던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뭔갈 깨달았다기보단 그냥 그렇게 넘어져도 괜찮은 거 같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멀찍이서 듣고 계시던 아빠가 말없이 다가오시더니 어깨를 주물러주셨다.
"아이고 우리 딸 애쓴다."
엄마의 공감과 아빠의 따뜻한 손길이 나를 안심시켰다. 우울해도 괜찮다. 좌절해도 괜찮다.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내 편이 되겠단 말이 다 뭉쳐져서 다가왔다.
정말 그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여전히 애를 쓰며 산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동여매고 일을 하고 아침에 요가를 해야하는데 늦잠을 자서 지각해 좌절하고 내 말을 못알아듣는 재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며 화를 삼킨다. 시작한지 두달이 넘은 킥복싱에 목숨을 걸고 샌드백에 내 모든 분노를 표출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외롭거나 마냥 슬프진 않다. 내 곁엔 내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미 나와 함께 있는 걸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야지. 또 열심히도 살거다. 그건 역시 부모님 때문이다.
두 분이 약해지는 시간이 내가 어른이 되는 속도보다 더디게 흐르길 바라게 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