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절절한 통속의 드라마
요즘 같은 세상에 '신파'가 통한다고 생각해?
뻔한 전개로 이어지는 진부한 영화나 드라마. 이 시대는 그런 작품을 '신파'라고 깎아내린다. 통속성과 대중성을 바탕으로 슬픔을 말하고 권선징악적 결말을 그리는 이야기. 대체로 이런 흐름을 가진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거꾸로, 비통속적이고 비대중적이기만 하면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통속성과 대중성을 버려야 사랑받는 세상이라니. 인생은 역시 모순투성이다.
통속을 피해 간 결과물. 그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작품성을 거론한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이야~ 어떻게 이런 길을 찾아냈어?", "브라보! 한 수 배웠다" 정도로 풀이될 터.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칭찬에 목이 마르다.
어떻게 하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글숲에 들어와 있다. 데이터 빵빵한 스마트폰과 충전기만 있으면 눈앞에 글이 별처럼 쏟아지는 세상이다. 무성한 활자들의 숲에서 존재감을 뽐내려면 어떤 한칼을 날려야 할까.
사람들은 말한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라고.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을 쓰라고. 그래야만 훌륭한 작가로 추대받을 수 있는 거라면 나는 애초에 글러 먹었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을 쓰는 것인데, 내 인생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구구절절한 통속의 드라마이기에.
뻔하고 흔한 이야기
'신파'의 법칙
신파를 내세운 장르에는 몇 가지 법칙이 따른다.
첫째, 주인공의 성장배경은 가난해야 한다.
그냥 가난한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질히 복도 없다 싶을 만큼, 없이 커야 한다.
둘째,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태어났으니 그냥저냥 사는 게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다.
셋째, 가족으로 시작해서 가족으로 완성된다.
어떤 이야기든 '기승전-가족'의 형태로 귀결되며
선한 영향력을 믿는 권선징악으로 끝이 난다.
내 인생은 이 법칙이 고루 적용된 정통 신파의 좋은 예다.
'고작 38년 짜리 인생이 파란만장 해봤자지'
아무렴. 누군가는 내게 이런 시선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내 지난 아픔들을 하나씩 꺼내어 슬픔을 무기로 배틀이라도 청해야 할까. 모든 인생에는 슬픔의 총량이 있다. 내 슬픔의 총량은 초년기에 집중돼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글을 쓰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주로 시를 쓰곤 했었는데 지금 와 읽어봐도 흠칫 놀랄 때가 있다. 그렇잖아도 감수성 짙은 나이에 온갖 슬픔이 버무려져 있었으니, 작가적 소양만 놓고 본다면 10대 때가 최절정기였던 셈이다.
산다는 것
쓴다는 것
하지만, 아무리 신파를 벗어나려 해 봐도 부질없는 일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글을 쓴다는 건 삶을 쓰는 것이기에. 삶을 바꿔야 글이 바뀐다는 얘긴데. 그건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신의 영역이다. 그렇다고 노력까지 접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본질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나는 <인간극장> 같은 휴먼물이 좋다. 회차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아도, 하나도 같은 사연은 없다.
한때는 드라마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꽤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내 분수를 너무 잘 아는 게 문제였다. 복권 당첨 만큼이나 요원한 일이 드라마 작가로 등단하는 일이다. 이따금씩 가슴을 후벼 파는 작품을 만나면 잊었던 꿈이 되살아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러닝타임 60분 짜리 대본은 두께가 얼마나 될까', '지금 저 대사는 몇 분 짜리 노동이야? 아니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지도 몰라'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 고개를 든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여섯 번째 이야기는 ‘산다는 것’을 주제로 그려졌다. 삶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남자주인공인 현빈의 입을 빌려 굵직한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지오: (N)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은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나는 왜. 십 년도 더 지난 드라마 속 대사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개척자가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빈 땅을 찾아내 희망의 길을 닦는다. 돌뿌리를 치우고 흙을 다듬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내가 심은 나무에 글이 영글면 그 길을 지나던 누군가의 마음에도 글꽃이 핀다.
삶의 고단함을 말하고, 가족애를 그리고,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성찰하는 식상한 이야기. 흔해 빠진 주제라도 나는 그런 얘기가 좋더라. 왜 좋을까 곰곰이 생각했더니 한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