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잡’에게 고하는 말
타다닥. 타다다닥닥.
파티션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에는 ㄴ자로 입을 벌린 노트북이 자리마다 한 대씩 놓여있다. 어떤 작가는 내레이션 원고의 분량을 채우고, 어떤 작가는 CG실에 넘길 자막의 디자인을 고민한다. 타다닥 타다닥. 한낮의 작가실에는 여러 손가락들이 내는 자판음이 불협 화음처럼 울려 퍼진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던 모두의 사무실.
그 풍경을 단칼에 일그러뜨린 건 어느 PD의 거친 언행이었다. "야! 이 잡가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잡가라는 소릴 듣는 거야, 알아?"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판 위에서 춤을 추던 손가락들은 난데없는 삿대질에 차갑게 굳어버렸다.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그 입은 왜 "야! 이 잡가야"로 시작해서 "그러니까 너희들이"로 뒷말을 이었을까. 화의 불씨를 지핀 특정 대상을 너머 그 자리에 앉아있던 나를 포함한 나머지 불특정 다수가 영문도 모른 채 싸잡아서 모욕을 당했다. 치욕스러웠던 그날로부터 수년을 달아나 오늘에 이르렀지만 '잡가..' 이 두 글자는 도리어 더 선명해질 뿐이다.
'잡'에 담긴 의미들
잊혀지지 않는 기억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원망이든 미련이든 그리움이든. 그게 뭐든 간에 한 번은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잡'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놓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내친김에 사전적 정의도 찾아봤다.
1. 잡 (job) : 일, 직장, 일자리를 뜻하는 영단어
2. 잡 (雜) : ‘여러 가지가 뒤섞인’ 또는 ‘자질구레한’
혹은 ‘막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크게 이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공교롭게도 그날 현장에 있던 작가들은 '잡(job)'을 하다가 '잡(雜)'이 되었다. 잡종, 잡식, 잡초..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잡'으로 시작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내 사전에는 그 모든 말보다 '잡가'가 우선순위로 떠 있다. 청춘을 바쳐 일한 업인데 누군가의 눈에는 한낮 잡스럽게 비쳐졌다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 누군가'가 누구보다 우리네 작가의 삶을 잘 아는 측근이라는 게 더없이 큰 충격이었다.
작가의 잡스러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
어떤 측면에서는 그의 말이 영 틀린 것도 아니다. 방송작가에겐 잡일이 많다. 대외적으로 작가의 이미지는 '글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 '방송'이 붙는 방송작가는 '방송글을 쓰는 사람' 정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실상을 놓고 보면, 방송작가 업무에서 글쓰기는 3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원고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마무리 수순으로 하는 일이다.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일들을 대략 떠올려봤다.
1. 기획: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아이디어
2. 섭외: 발로 뛰거나 전화를 걸거나
3. 취재: 대면 또는 비대면 인터뷰
4. 촬영 구성안 및 편집 구성안 작성
5. 촬영 시 필요한 소품과 의상 준비
6. 상황에 따라 FD(현장연출) 역할
7. 원고 작업: 내레이션 녹음용, 스튜디오 진행용
8. 자막 원고: 내용 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기술
9. 필요 시, 카메오로 출연
10. 협찬 상품 발송 외 기타 등등
어림잡아 생각해도 열 가지 정도로 가지치기가 된다. 단순히 잡무라고 치부하기엔 각각의 비중이 상당하다. 고로, 고상하게 앉아서 글만 쓸 시간이 없다. 작가들의 이런 잡다한 능력이 브라운관이나 주파수에 녹아든다는 걸.. 보다 많은 이들이 알게 되길 희망한다.
작가님? 그놈의
작가님 소리가 뭐라고
"작가님"
1년 차나 10년 차나 차별 없이 작가님 소리를 듣는다. 처음으로 이렇게 불리었던 스물셋 무렵에는 괜히 낯이 뜨겁고 한없이 민망했다. 그 고비를 넘기니 어느 순간부터는 취기가 올랐다. '그래, 나도 작가님이지' 하며 오만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오만방자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는 영락없는 애송이였다. 그럼에도 자존심은 있어서 누가 내 원고에 빨간 비를 내리면 분하고 억울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다른 건 몰라도 글이라면 자신 있던 나였다. 학창 시절에 글짓기로 상 좀 휩쓸었던 치기 어린 풋내기가 공식적인 타이틀까지 등에 업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프로 세계에 입문한 아마추어의 성장통은 지독했다. 들끓는 열정에 마음을 데이느라 앞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풋내기를 영글게 했다.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소리까지 들어가며 긴 세월 담금질을 겪고 보니, 내 수중에는 귀한 가르침 하나가 남았다.
어떤 이름의 자리든 처음부터 주어지는 건 없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시간이라는 빗 속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그 하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청춘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가엾고 서럽고
뜨겁고 예뻤던
나의 애끓는 청춘을.
괜찮아,
잡스러운 게
뭐 어때서
"사람 참! 그릇이 그렇게 작아서 어디에 쓰나?"
흔히들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다. 그릇이 큰 사람이라야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작은 그릇은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걸까. 요리를 하다 보면 큰 그릇은 큰 그릇 대로, 중간 그릇은 중간 그릇 대로, 작은 종지는 작은 종지 대로 각각의 쓰임이 있다. 예를 들어, 파전을 한 장 구웠다고 치자. 종지에 담아야 할 간장을 넓은 접시에 붓는다면 어떨까. 상에 자리만 비좁아지고 설거지의 수고만 늘어난다. 반대로, 커다란 파전을 잘게잘게 찢어서 작은 종지 여러 개에 조금씩 담아 놓는다면? 그렇게 먹으려면 대체 몇 개의 종지를 꺼내야 할까.
간이역 앞 작은 매점에서 컵라면과 풍선껌을 팔며 한푼 두푼 벌어서 자식들을 공부시킨 부부. 비싼 대학공부 마치고 수십 번 낙오 끝에 합격한 어느 회사의 말단 인턴사원. 대학로에서 포스터를 붙이며 호객 행위를 하는 어느 소극장의 무명 배우. 그들이 하는 일이 허드렛일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일들을 '잡일'이라고 치부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나?! 그 누구도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함부로 거론할 자격이 없다.
다른 이의 인생을 논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제대로 진단해 보자. 언제부터인가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의 마지막 직장일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직'과 '퇴사'가 트렌드인가 싶을 만큼 빈번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쯤 되면 울타리는 회사가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 뭐든 많이 부딪치고 많이 경험하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이력서에 소소한 경력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누구도 무시 못할 굵직한 커리어가 된다.
대체 내 운명의 직업은 무얼까 고뇌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든 잡다한 경험치가 훗날 나를 살리는 잡학다식으로 승화되는 기쁨. 그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글로써 ‘잡가다움’을 발휘하는 중이다.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