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응급실은 어디인가요?
" Hellow. I'm Kim.
여보세요~ 나야, kim.
Can you hear me? Okay.
내 말 잘 들려? 응, 그래.
I wanna ask you something… “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부리나케 퇴근한 남편이 체코사람인 직장 동료 H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아픈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남편이 던진 질문 한 마디에 열 마디, 스무 마디로 응답해 주었다. 그녀의 처방은 대략 이러하다. "일단 약국에 가서 어린이용 OOO 약을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OOO 병원에 가면 소아 응급실이 있는데 지금 바로 가 보는 게 어때?"
통화를 끝낸 남편은 조바심이 나는 눈치다. 서둘러서 약국도 가야 하고 병원도 가 봐야 하는데... 나도 아이도 종일 진땀을 빼서인지 아니면 남편이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초저녁부터 맥이 풀려 버렸다.
내겐 너무 혹독한
해외살이 신고식
남편: 아이가 장염에 걸린 것 같은데
무슨 약이 좋을까요?
구토와 설사가 심하거든요.
약사: 지금 몇 살이죠?
남편: 두 살이에요, 정확히는 27개월이고요.
약사: 그럼 이 약을 드릴 테니
으깬 바나나에 넣어서 먹이세요.
내 시선은 유모차에 있었지만 온 신경은 이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에 집중하느라 잔뜩 곤두서 있었다. 가뜩이나 아이의 식단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밀가루 음식 안돼요. 요거트 같은 것도 안되고요. 아! 우유도 먹이면 안 됩니다." 이렇게 늘 주던 것들만 콕콕 집어서 안된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밀가루 음식이야 소화가 잘 안되니까 당연한 얘기라 해도 요거트나 우유도 안 된다고요? 밥보다 우유를 더 좋아하는 아이인데 다 나을 때까지 절대로 주면 안 된다고요? 휴... 그럼 되는 건 대체 뭐냐고 물었다. "바나나가 설사를 멈추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니까 으깨서 먹이면 좋고요. 사과랑 당근은 괜찮겠네요. 아! 비스킷 정도는 괜찮습니다."
비.스.킷? 장염과 비스킷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넣게 되다니. 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우유도 생으로 끊어야 할 판에 하나라도 더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마침 우리가 갔던 약국이 마트 건물 안에 있어서 약사가 일러주는 대로 바나나부터 사과, 그리고 비스킷까지 장바구니에 담아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장염과 비스킷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차에 올라서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7시.
내 마음 같아서는 얼른 집에 가서 약부터 먹였으면 했지만
시동을 켠 남편은 이미 병원 응급실로 내달리고 있었다.
아이: “놀… 놀? 으으응~ 이쪽? 놀??”
동물 그림으로 꾸며놓은 소아응급실 인테리어를 보고 아마도 놀이터를 떠올린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하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니 꾹 눌러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안되지. 이럴 때가 아니지.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 찰나에 굳게 닫혔던 진료실 문이 활짝 열렸다. 자석처럼 안으로 빨려 들어가긴 했지만 딱히 뭘 기대한 건 아니었다. 의사는 약사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들을 한번 더 되풀이했다.
무미건조한 우리의 표정을 바꾼 건 뜻밖의 물건이었다. 이틀 뒤에 경과를 봐야 한다면서 나무젓가락 반만 한 길이의 빈 소변통을 건네주는 게 아닌가. 그럼 그날, 아이의 소변을 받아서 다시 오면 되냐고 물었더니 “아니죠. 여기로 오면 안되고요. 아이 이름으로 등록한 주치의한테 가서 보여주세요. 여기. 이 소견서와 함께요”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료는 여기에서 봤는데, 결과는 다른 곳에 가서 들으라니. 나원참. 하는 수없이 그러겠다고는 했지만 이방인인 나로서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결국 병원에서 받아온 건 노란 소변통이 전부다. 그 후로 아이는 며칠을 꼼짝없이 더 아파야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못지않게 괴로웠다. 세상에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겠지만 아이가 아플 때 흰죽과 비스킷을 먹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이런 게 바로 해외살이구나. 뭐랄까, 이제야 제대로 실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