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해외살이 신고식
창밖이 어둑한 걸 보니 아마도 밤인 것 같다. 차가운 방바닥에 쓰러져 배를 움켜쥐고 있는 어린 날의 내가 보인다. 도대체 난... 그 밤에 왜 혼자 울고 있었을까. 그때 내 나이가 열세 살 쯤 되었으니 25년 씩이나 지난 일을 세세히 다 기억해내긴 어렵다. 그저 기억의 파편들 중에서도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 몇 조각으로 당시의 상황을 어렴풋이 되짚어 볼 뿐이다. 그 후로 얼마나 더 신음했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떻게 병원으로 옮겨졌는지도 기억에 없다.
다만, 오늘날까지도 분명하게 떠오르는 건 병원 응급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통증이 가셨다는 것과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옆에는 놀란 얼굴을 한 엄마가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 사경에서 날 건져 준 의사의 말이... 내가 아픈 건 '장염'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주말에는 이웃 도시인 폴란드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스트라바(Ostrava)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폴란드 남부에 있는 카토비체(Katowice)라는 도시를 만날 수 있다. 토요일 점심 무렵에 도착한 우리는 지인이 추천해 준 일식집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번화가에 있는 유서 깊은 호텔에서 호캉스도 즐겼다. 이튿날인 일요일에는 아쿠아리움이 있는 동물원을 찾았는데 "와~ 저기 봐! 사자가 빠빠를 먹고 있네", "이야~ 펭귄들이 수영하는 거 보이지? 멋지다~” 이런 감탄사들을 쏟아내며 아이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가졌다.
대체로 완벽한 주말이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된 월요일 아침.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한창 장난감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들. 보통날처럼 애지중지하는 장난감 자동차들과 아침을 맞았다.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인생 3년 차 개구쟁이를 어르고 달래 가며 밥을 먹이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오전이 지나간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그런 게 무슨 대수일까. 온몸을 밥풀로 칠갑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한 끼를 먹여냈다는 게 중요하다.
혼이 쏙 빠지는 식사 시간도 끝났겠다 이제 좀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무슨 일인지 아이가 전에 없던 행동을 보인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다 내팽개치고 달려와서는 내 품에 쓰러지듯 안기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낯빛이 예사롭지 않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배를 크게 부풀리며 숨을 몇 번이나 거칠게 몰아쉬더니 이내 구토 증세를 보이고 말았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뭘 잘못 먹였나', '밤새 징조가 있었는데 놓친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는 동안에도 아이는 내내 괴로워했다. 연거푸 세 번의 토를 하며 전날 먹은 음식까지 싹 다 게워냈고 구토 증세가 가라앉을 때쯤에는 거짓말처럼 설사가 시작됐다.
그러고 보니
낯빛이 예사롭지 않다
단단히 탈이난 게 분명하다. 잦은 일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도 자다가 깨서 토를 한 적이 있고 드문드문 설사를 보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몸에 있는 모든 독소를 빼내려는 듯 구토도 설사도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다급한 손으로 집에 있는 약상자를 열어보니 한국에서 가져온 아기 정장제가 보였다. 따뜻한 보리차에 정장제를 한 포 먹이고 나니 슬그머니 눈을 감는 아이. 젖병을 부여잡고 힘없이 흐느끼다가 잠이 들었고,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좋아지길 바랐다.
아이가 잠이 든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심상치 않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피해 가는 법이 없다. 잠에서 깨어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시작된 구토와 설사.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뒤늦게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나: 있잖아… 애가 좀 아파.
남편: 애가 아프다니? 어디가? 언제부터?
나: 아침부터 안 좋았는데
아무래도 장염인 것 같아.
남편: 그걸 왜 이제 말해?
알았어. 지금 바로 출발할게.
남편은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늘 노심초사했었다. 돌봐 줄 사람 하나 없는 이역만리에서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 아프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당부하곤 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고 어떻게든 우리의 힘으로 이 아이를 보살펴야만 한다. 지금은 온통 그 생각뿐이다.
어쩌면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 옛날, 어린 딸이었던 내가 방바닥을 구르며 아파했을 때, 그때 내 부모의 마음도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모든 상황을 내 위주로만 받아들였다. 언제 내가 아팠고 언제 내가 상처 받았는지. 그렇게 내 감정에 취해 있느라 몰랐는데 부모가 되고 보니 무심코 던져놨던 감정의 씨앗에 하나둘씩 싹이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