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연애가 이보다 애틋할까
"내 평생 너처럼 괘씸한 건 본 적이 없어"
MBC 사극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 나온 대사다. 극 중에서 왕이 된 산이가 출궁한 덕임을 생각하며 쏟아낸 말이다. 태어나서 유일하게 연모한 너인데 그 순정을 무참히 거절 당해 괘씸하고. 빌지도 매달리지도 않고 홀연히 떠나 버린 상대가 눈물나게 야속했을 터.
내게도 이런 감정을 심어주는 대상이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했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절절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기쁠 때, 지칠 때, 속상할 때, 화날 때... 모든 날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물론 그 감정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내 평생의 짝사랑 ‘글쓰기’
이제 좀 만만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어째서 너는 쓰면 쓸수록 더 버거운 것이냐. 정말이지 산이 말이 딱 맞다. 내 평생 이처럼 괘씸한 건 본 적이 없다.
"너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지?"
"스물 일곱이요"
"일곱이라... 그럼 아직 안 늦었네
이쯤에서 작가일 관두고 다른 일 알아봐"
농담이겠거니 하고 가벼이 웃어 넘기기엔 귀에 거슬릴 만큼 담담한 어투였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조언이었고 그래서 더 진심처럼 다가왔다. '잠깐만.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일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의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선배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쯤에서 멈추라고. 어서 도망치라고. 너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허나, 그런 말을 듣고도 멈출 수가 없었다. 달아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오기가 났다. 얼마나 오래 고심하고 염원했던 일인데 피어 보기도 전에 접으라니. 오로지 이 길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 길은 길이 아니라니… 말도 안 돼.
묻고 싶었다.
‘그러는 선배는 왜 아직 여기에 있나요?’
세월이 꽤 흘렀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이후로도 내내 글을 썼다. 구태여 언제까지라고 못을 박은 적은 없지만 방송작가로 일하는 시간이 15년이나 될 줄은 몰랐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자주 괴로웠고 가끔 뿌듯했다. 일상적인 괴로움이 한계치를 넘어설 때마다 궤도 이탈의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녀들이 떠올랐다.
“넌 아직 늦지 않았어
작가일 관두고 다른 일 알아봐”
당시에는 그런 선배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자연히 알게 되었다. 작가로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고달프고 고독한지. 글이라는 녀석은 참으로 괘씸해서 경력이 쌓이고 노하우가 쌓인다고 적당히 봐주는 법이 없다. 백 번을 쓰고 천 번을 써도 쓸 때마다 괴로운 게 글이다.
스물 셋에 입봉 해서 밤낮없이 원고를 써냈다. 어떤 날은 제목 하나를 놓고 밤을 지새웠고, 또 어떤 날은 오프닝 멘트만 수십 번을 뜯어고쳤다. 쓰다가 막히면 죄 없는 머리카락을 쥐어 뜯기도 하고, 그렇잖아도 타 들어가는 속에 새까만 카페인을 연신 들이붓기도 했다.
그러다 한날은 턱에서 이상한 소리가 감지됐다.
“따악~ 딱~ 따아악~”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턱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전에 없던 소리와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진단명이 나왔다. 20대 중반에 ‘턱관절 장애’가 찾아온 거다.
맙소사.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당시에 진료를 봐주었던 치과의사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턱관절 장애의 가장 큰 요인은 스트레스인데요. 연령대로 보면 20대 여성이 가장 많습니다”
그러니 별 거 아니다? 나 말고도 숱하게 많은 20대 여성이 같은 병을 앓고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라는 건가. 나원참. 뭐, 그런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마음은 점점 삐딱해졌다. 글은 머리와 손으로 쓰는 줄 알았는데 어째서 턱이 고장난 걸까.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내 몸을 찬찬히 살피게 되었다. 글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을 앙다물고 안면근육에 바짝 힘을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것이다.
그렇게 나는 20대 초반부터 만성두통과 턱관절 장애, 카페인 중독에 시달렸다. 어디 그뿐이랴. 중요한 마감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낄 때는 빈뇨를 보이기도 했다. 배뇨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걸 ‘빈뇨’라고 하는데 내 경우가 딱 그랬다. 심할 때는 한 시간에 열 번 이상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글을 쓰는 일. 작가로 사는 일. 분명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쓰는 내내 단 한 순간도 고통의 굴레를 벗어난 적이 없다.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끝 모를 괴로움과의 동행은 글을 쓰고 창작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요즘의 나는 더 이상 방송글을 쓰지 않는다. 재작년에 체코로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온 가족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잠시 일시정지 상태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쓴다. 숙제 같은 일감도 없고 글을 쓴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비틀어 생각하면, 그래서 더더욱 쓰고 싶어졌다. 돈 값 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됐고, 빨간펜 선생님처럼 이래라 저래라 칼자루를 휘두르는 의뢰인도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온전히 자유를 찾았다.
‘글’은 작가의 영역이지만 ‘방송’은 철저한 협업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방송작가의 원고는 작가가 쓴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것’은 될 수가 없다. 편집 흐름에 따라 바뀔 수도 있고, 진행자의 견해가 덧붙을 수도 있다. 방송의 생리가 그런 것이기에 섭섭해 할 일이 아님에도, 소심한 나는 의기소침해지는 날이 많았다.
지나고 보니 알겠다. 그 모든 과잉행동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몸이 망가지는 줄 알면서도 집착했다. 적당히 무난한 게 싫어서 매번 더 좋은 표현을 찾아 방황했다. 그렇게 청춘을 바쳐가며 해바라기를 했다. 살면서 가장 많은 애정과 열정을 쏟아부은 대상이 바로 글이다. 그런데 어찌 그만둘 수 있을까. 비록 전업작가의 시계는 잠시 멈추었지만 내 인생의 진짜 글쓰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소재부터 제목, 표지와 내용까지. 내 글에 대한 전권을 온전히 손에 넣은 지금의 글쓰기가… 그래서 내게는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