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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Apr 02. 2022

브런치가 키운 출간의 꿈

‘꿈’에 대한 단상

친구: 야! 너는 좋겠다
나: 뭐가?
친구: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도 벌잖아
나: 속 모르는 소리 하시네;;
      꿈이 돈벌이가 되는 순간, 그 꿈은 깨지는 거야


중학교 때부터 방송인이 되길 희망했다. 뭐든 상관없었다. 뭐가 됐든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 무렵 인기를 끌었던 청소년 드라마 <나>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겠다. 방송에 대한 환상으로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버렸나 보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틈만 나면 시를 써대곤 했었는데 시보다 더 매력적인 장르가 있다는 걸 알아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방송반 위치 파악하기'였다. 10대에만 쏟아부을 수 있는 열정으로 기어코 방송반의 일원이 되었고, 덕분에 누구보다 행복한 고교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몰랐다. '방송'이 내 인생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차지하게 될지. 그로 인해 내가 어떤 직업의식을 갖게 될지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국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꿈을 이룬 것이고 불행인 것은 그와 동시에 꿈이 깨어지는 비극을 맛봐야 했다. 한참 지난 후에야 든 생각이지만 그냥 꿈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았겠다 싶을 만큼 현장은 냉혹했고 현실은 비참했다.


그토록 원했던 꿈을 이뤘는데 대체 왜...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을까. 자존심이 깨지고, 열정이 조각나고, 희망이 뭉개지는 날들이 꽤 오래 지속됐다. 내가 꿨던 꿈이 겨우 이런 모습이라니. 실망감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무지했고 미개했다. 그러니 겁도 없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겠지만. 그 대가로 10년 간 불행했고 그만두기 전, 한 5년 간은 이상할 만큼 행복했다. 작가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하고 나서야 웃으며 일할 수 있었다.




인생은 Deja Vu  



오늘날의 나는 또다시 스물셋 그 애송이가 되었다. 참으로 도돌이표 같은 인생이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제는 '방송하는 작가’가 아닌 '출간하는 작가'가 되길 꿈꾼다.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갚고 싶다는 비밀스런 소망이 있었다.


간혹 그런 마음을 입에 올릴 때면 자못 부끄러웠다. 언감생심. 감히 내가. 감히 책을. 너무 귀하고 소중한 이름이라 유리 액자 속에 가둬두고픈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신성한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은.. 그런 이상한 심리가 존재했던 것 같다.


책. 출판. 저자. 독자.

이런 단어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은 열망이 솟은 건 작년 8월, 브런치에 입성하면서 부터다. 작가 승인이 떨어진 그날부터 오직 써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찼다. 그로부터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책 한 권 분량의 글이 쌓였다.


참 기묘한 일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허기가 차 올랐다. 갈수록 고민이 깊어졌고, 자주 가라앉았다.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에는 글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갓 방송을 시작했던 신입 작가 때처럼 또다시 글을 쓰기가 두려워졌다. 그런데 그보다 무서운 건, 이대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것이리라. 그러니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글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무작정 투고를 시작했다. 처음 방송국에 들어갔던 그날처럼. 이번에도 겁 없이 출판이라는 세계로 몸을 던졌다. 예상했던 대로 브런치라는 이불 밖은 위험했다. 마치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을 던져놓고 혹여라도 거절당할까 봐 잔뜩 긴장한 사람처럼.

조마조마한 날들이 며칠 이어졌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날이 선물처럼 날아들었다.


원고가 마음에 드니 함께 좋은 책을 만들어보자는 설레는 제안에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출판 계약을 마쳤고 제목과 책 크기가 정해졌다.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은 계속 동동거린다. 요즘은 예쁘고 잘 생긴 배우를 보면 '설렘사'라는 말을 쓰던데.. 나는.. 곧 세상에 나올 내 생의 첫 종이책을 생각하면 그 비슷한 감정으로 몽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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