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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Jun 10. 2022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책이다

나의 첫 책을 기다리며

책이요? 아휴…자신 없어요.
내 얘기를 꺼내는 것도 남사스럽고요.
하여간 글재주가 없는데 뭘 어떻게 쓰겠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책쓰기'를 권하고 있다. 열에 아홉은 손사래를 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이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내심 골똘해지는 얼굴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업으로 글을 썼던 나조차도 출판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세계라고 단정했었다. 돌이켜 보니, 막연한 동경심이 내 안에 담벼락을 높게 쌓아 올렸고, 그 벽을 허물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


내 이름으로 된 종이책이 서점에. 도서관에. 그리고 사람들 손에. 그런 상상을 하니 온몸이 찌릿해져 온다. 먹고 살기에도 바쁘다는 구실로, 돈이 되지 않는 글은 외면하고 살았다.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 글을 납품했다. 좋게 말하면 내공을 기르는 과정이었고, 푸념을 좀 섞어 말하면 소모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떤 물건이든 15년을 쓰면 남루해지는 것처럼 나 또한 닳고 닳아서 머지않아 가루처럼 부서지겠구나, 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몸을 쓰면 쓸수록. 영혼을 갈아넣으면 넣을수록.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뜨거웁게 차오른다. 그렇담. 심중에 용솟음 치는 그 불덩이를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 그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책쓰기로 분출되었다. 이렇다 할 업적도 없고 유명인사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 그럼 된 것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격이 되지 않나.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히스토리를 만들며 살아간다. 삶을 영위하는 행위 자체가 경이롭기 그지없다.


최근에 막을 내린 드라마,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여주인공인 미정이 나직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이렇게 읊조렸다. “태어나기 이전에는 물론 존재하지 않았고, 50년이 지난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자꾸만 인간은 내가 영원할 것처럼 군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임에도 말이다. 꼭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군다. 사람이면 하나 같이. 전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물론 이렇게만 생각하고 살면 너무 침울하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쓴다. 살아남은 오늘을 적는다. 나라는 생명체는 언젠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라지겠지만. 내가 존재한 시간들과 지나온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긴다면. 죽어도 죽는 게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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