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목이 아팠다. 원래도 작은 두 손을 더 작게 오므려 확성기 마냥 입가에 붙이고는, 있는 힘껏 목청을 높인다. “할머니~~~이~~~” 서너 번 쯤 불렀을까. 먹은 것도 없는데 입에서 짠맛이 돈다. 바다는 내 목소리를 삼켰고, 나는 그 바다의 소금기를 삼켰다.
"할머니! 내가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아이고, 뭣하러 와~ 아고.. 아고.. 허리야"
밀레.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그가 '이삭 줍는 여인들'보다 우리 할머니를 먼저 알았다면 밀레의 대표작이 <자갈 줍는 여인들>로 바뀌었을까. 허무맹랑한 소리인 줄은 알지만, 이리도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그 모습이 참 많이 닮았더랬다.
"우와! 무슨 돌이 이래? 꼭 보석 같아, 할머니~"
"이쁘쟈? 그래도 할미 눈에는 우리 강아지가 젤로 이쁜디"
"피.. 그럼 이거 그만 줍고 들어가자, 응?"
“그리야. 알았어. 이 망만 다 채우고이~”
철썩. 철푸덕. 동해의 사나운 파도가 어여쁜 자갈들 앞에서 맥없이 부서졌다. 맵시 좋은 돌들 사이로 하얀 물거품이 부글부글 일었다가 꺼지기를 수차례. 그 옆에 우두커니 선 나는 할머니 손에 들린 자갈망을 원망스럽게 노려본다. 대체 저게 뭐길래. 그깟 돌덩이들이 다 뭐길래.
얼마 후,
낯익은 트럭 한 대가 마을로 들어섰다. 투루룰. 툴툴툴툴툴. 요란스럽게 꺼지는 시동 소리가 내 입술 끝에 툴툴대며 걸려있는 볼멘소리와 다를 게 없다.
"으잇짜! 아따 무겁네요.
오늘도 요놈들 때문에 욕보셨지요?"
"말로만 그라지 말고 삯이나 많이 쳐 주소"
그래서. 나는 대리석이 싫다. 으리으리한 건물 안에서 매끈하게 반짝이는 바닥을 볼 때마다 그녀의 굽은 등이 떠오르니까. 주름진 손으로 줍고 또 주웠던 자갈들. 그걸 팔고 받은 수고비는 대부분 점빵으로 들어갔다. 어린 손녀의 고사리 손을 붙잡고 마을 점빵에 가서 과자도 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었던 할머니. 활처럼 휘어버린 등으로 엉거주춤 걸으면서도 다 큰 나를 업고 다녔던 할머니.
내가 그림에 재주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밀레처럼 붓을 들었더라면. 자갈 줍는 할머니를 멋들어지게 그려서 비싼 값에 내다 팔았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나의 그녀가 얼음짱 같은 바닷물에 맨살을 담그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토록 몸이 볼품없이 굽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할머니! 이거 봐봐! 나도 이만큼 주웠다?”
“아이구 손 시려~ 아가! 그만햐”
“재밌는데 왜~ 우와우와. 이 돌은 보라색이네?”
“곱지? 그건 우리 강아지 하면 되겠구마”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하얀 자갈들 틈에서 오묘한 색을 띠었던 영롱한 작은 돌. 돌이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곱게 예뻤는데. 그때 그 자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