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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Sep 27. 2022

스물 다섯, 친구의 부고를 들었다

저... 미정이 누나 동생인데요... 내일이 누나 발인이라 연락드립니다.


스물 다섯. 고작 그 나이였다. 꽃으로 치면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릴 시기였는데... 그 아이는 왜... 피기도 전에 지려 했을까. 미정이에게 형제가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위로 언니가 한 명, 아래로 남동생이 한 명. 그렇게 삼남매 중에 둘째였던 그녀는 아담한 체구에 얼굴은 아기처럼 뽀얗고, 웃을 때마다 윗입술 밑으로 슬쩍슬쩍 드러나는 덧니가 매력적인 친구였다. 울산에서 만난 우리는 중학교 3학년을 같은 반에서 보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시로 쪽지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짧은 편지글에 시 한 구절을 곁들여서 보내면 미정이는 앙증맞은 그림으로 화답하곤 했다.


"문자 받았어?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나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미정이가. 미정이가 왜..."

"다른 애들도 메시지 받았겠지?

당장 비행기표부터 알아봐야겠다"

"응. 나도 바로 움직일게. 가서 봐"


미정이의 부고를 받고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친구는 경북 경산에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부산에서 신입 방송작가로 일하며 허덕이고 있었는데. 부고를 받은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주말을 맞아 부모님이 계신 울산에 올라와 있었다.


"엄마. 나... 미정이... 미정이 보러 갔다 올게"



   




만사를 제쳐두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서울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 두 눈은 초점을 상실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구름이. 하늘이. 바다가. 정말이지 짜증나게 예뻐서. 이렇게 좋은 날에 친구가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통해서. 부러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어서 와, 얘들아. 와 줘서 고맙다"

"제가 연락드렸던 미정이 누나 동생이에요"



서울 모처에 있는 종합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또 다른 미정이가 두 명 서 있었다. 자식을 앞세우고 황망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조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남매는 영락없는 미정이의 핏줄이었다. 핏기 없는 낯빛 위로 마른 눈물 자국이 애석하다. 애써 추켜올린 눈꺼풀과 힘없이 포갠 두 손. 꺼져가는 어깨 위로 간신히 걸친 상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락 눈물샘이 터졌다.


얼마나 울었을까.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다른 조문객들 틈에 앉았다. 한바탕 슬픔의 화수분을 터뜨리고 나니 다시금 궁금해졌다. 서울에서 잘 사는 줄로만 알았던 내 친구가 스스로 삶을 포기한 이유를. 사흘 간의 장례기간이 있음에도 발인 전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부고를 띄운 사연을. 그 모든 미스터리는 지금이 아니면. 오늘이 아니면. 영영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미정이가 방문을 걸어 잠그는 날이 많았어. 그날도 그런 날 중에 하루였는데..."  



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미정이의 마지막 모습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언니였다. 서울에서 미대를 나온 미정이는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같이 사는 피붙이에게도 말못할 슬픔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밖에서 보는 미정이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다. 좋은 대학을 나와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다. 모든 게 원만하게 흘러가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속은 남몰래 곪고 있었던 거다. 몰랐다. 짐작도 못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아파하는 동안, 난 무얼하고 있었나.



"누나 전화기가 비밀번호로 잠겨있어서

그걸 푸는 데 며칠 걸렸어요.

오늘에서야 간신히 풀어서 급하게 연락드린 거예요"



친구의 남동생에게서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있는데 누군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다. “지금부터 입관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입관. 스물 다섯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경험이 되겠지만. 미정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친구들과 나는 한 명도 빠짐없이 입관 대열에 섰다.



‘미정아. 우리 왔어.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잘 지내.

그리고.. 잘 가’






입관식을 마치고 미정이의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유족들에 따르면 미정이는 어느 한적한 숲 속 푸른 나무 밑에 안치된다고 했다. 친구들과 나는 수목장까지 따라가겠다고 했으나, 유족들이 원치 않았다. 미정이가 조용히 쉬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그게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지만 요즘도 나는 하늘로 곧게 뻗은 나무를 보면 그 친구 생각에 마음이 아린다. “미정아... 미정아..." 이제 더는 부를 수도 없는 그 이름. 미정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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