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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Oct 05. 2022

그 해 여름, 초량역 옥탑방

이번 역은 초량. 초량역 입니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초량역. 그곳에는 나의 첫 자취방이 있었다. 보증금 천에 월세 15만원 짜리 옥탑방이었는데 그나마도 감사했다. 목돈이 없어서 달에 30만원이나 주고 쪽방 같은 고시원을 전전하던 때였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전화를 받기 위해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작가님. 이 구성안요.

아.. 손 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말이 좋아 '작가님'이지, 그 무렵에 나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겨우 128만원의 월급을 벌기 위해 매일같이 욕을 먹는 말단 작가 나부랭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퇴근시간마다 생각했다. 어디 땅굴이라도 파서 들어가고 싶다고. 그런 마음으로 지하철을 탄다. 덜컹거리는 회색열차를 타고 지하세계를 달린다. 그러다 정수리 위에서 들려오는 ‘디스 스테이션 이즈 초량’ 어쩌고 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어서오이소~ 뭐 드릴까예?"  

"자, 떨이 합니더! 떨이!"


그 시절,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붐비고 소란스러웠다. 어둡고 탁한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오면, 거리를 장악한 돼지국밥 냄새에 마음이 동한다. 간신히 유혹을 뿌리치고 모퉁이를 돌아 익숙한 골목에 들어선다. 어수선한 시장통 초입을 지나 복작복작한 한복판까지 파고들면 정겨운 빵집 건물이 나오는데. 그집 사장님이 바로 그 상가의 건물주이자, 나의 집주인이었다.


"왔어요? 오늘도 퇴근이 늦었네”







엘리베이터는 커녕 센서등도 제대로 안 달려있는 허름한 5층 건물이었다. 주인 아주머니와 그 식구들은 4층, 나는 한층 더 위인 꼭대기에 묵었다. 대부분의 옥탑방이 그러하듯, 멀리서 보면 꼭 짓다 만 것처럼 보인다. 마치 몸집이 큰 레고 위에 작은 모자 하나를 성의없이 얹어놓은 것 같달까. 아무튼 나의 거처보다, 주인집 식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옥상 부지가 더 넓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불이야~~
엄마야 우짜꼬!


초여름이었다. 모처럼 촬영이 없는 주말 아침. 핸드폰도 꺼놓고 부족한 잠을 몰아서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환청같은 아우성이 들려온다.


"불이야~~ 불~~”


잠결에도 그 소리만큼은 선명했다. 꿈이라고 하기엔 방 안 공기가 터무니없이 무겁고 뜨거웠다. 그러고 보니 코끝을 스치는 더운 공기 사이로 매캐한 냄새가 감지된다. 침대에서 현관까지 다섯 발자국 쯤 되려나. 문까지 걸어가는 몇 초 사이에 확실히 직감했다. 이건 꿈이 아니다. 그런 확신이 들자, 불길한 기운이 파도처럼 엄습했다.


불이다! 진짜로 불이났다!! 현관에 가까이 붙을수록 실감되는 화마의 존재감에 몸이 바르르 떨렸다. 문 밖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봤다. 불길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화재라면.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문을 열어도 죽고 문을 열지 않아도 죽는다.



"아이고 다 탔네~ 우야꼬~"



밖에선 누군가가 계속 고함을 치고 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야만 했다. 결국 뜨거운 손잡이를 붙들었다. 이제 돌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문이.. 문이 열리지가 않는다. 한 손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아서 두 손으로 매달려 용을 써보지만 만만치가 않다. 다시 한 번 젖먹던 힘을 다해 문고리를 사정없이 돌려보는데. 한참을 씨름한 끝에, 주먹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 틈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열기가 방안으로 훅 들어오더니. 커다란 철문이 맥없이 우그러졌다. 그렇게 문이 망가진 뒤론 더 이상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봉변을 맞은 철문 위로 그을음이 번진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내 마음에도 검은 눈물이 흘렀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만약 옥탑방 건물이 시장통 한복판에 있지 않았다면. 주인 아주머니의 빵집이 같은 건물 1층에 있지 않았다면. 아마 난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다행들 덕분에 화재는 골든타임 안에 진압될 수 있었다.


"미안해서 어떡해~

아가씨도 많이 놀랐지?"


주인 아주머니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래층 주인집에는 세 자녀가 있었는데. 부부는 주말에도 장사를 해야했기에 함께 사는 시어른이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맡는 눈치였다. 아마도 그게 화근이 된 모양이다. 어제 일도 가물가물한 연세였다. 그날 어르신은 가스불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잠시 집을 비웠다고 한다. 그 잠깐이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사이에 4층 내부는 새까맣게 타서 쑥대밭이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던 나는 그대로 뉴스거리가 될 뻔 했다.


그때 똑똑히 보았다. 불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화마에게 잡아먹히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서면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되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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