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사람이 왜 그래요?"
"... 내가 뭘?"
"신입들 말예요. 나한텐 안 그러면서
걔네한텐 왜 그렇게 너그러운 거냐고요"
작가 후배인 J는 속에 없는 말은 못한다. 누구 눈치를 보느라 마음에 있는 말을 삼키지도 않는다. 주관이 뚜렷한 친구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매사에 거침이 없다.
"아니, 그렇잖아요. 작가는 프리랜서고,
이 세계의 캐치프레이즈는 '각자도생'이 아니냐고요"
J의 말이 맞다. 정글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누가 누굴 챙긴단 말인가. 프리랜서 작가를 다른 말로 바꾸면 '개인사업자'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개중에 특출 난 몇몇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버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영세한 편이다. 한 방송국 안에 있어도 누구는 프로그램을 문어발로 받고, 누구는 동아줄 하나에 간신히 매달린다.
"네가 뭘 오해한 것 같은데,
너그러운 게 아니라
화낼 일이 아니라서 넘어간 거야”
"화가 안 난다고요? 실수투성인데요?”
"처음이라서 서툰 거잖아. 몰라서 못한 거잖아.
신입일 때는 누구나 다 그런 건데,
당연한 일에 왜 화를 내?
너도 나도. 처음엔 엉망이었잖아"
그렇게. 그 무렵 우리의 화두는 '너그러움'이 되었다. 후배의 말처럼 내가 유달리 후했던 걸까.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랬다면 20년 가까이 정글에서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야생에 사는 하루살이 처지에. 착한 선배 콤플렉스 따위 거추장스런 허세일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일말의 너그러움을 발휘했던 이유는.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부산의 모 방송국. 그곳에서 나는 대작가의 꿈을 꾸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열정이 과했다. 더 정확히는 ‘의욕’만 넘쳤다. 이제 막 입봉한 새내기 작가가 잘하면 뭘 얼마나 잘할 거라고.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1년 365일 쓸데없는 소모전을 치렀다. 그러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도 했다.
어느 평일 아침.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주위가 밝았다. 본능적으로 전화기를 열었는데 부재중 전화가 무려.. 열 통. 정신이 번쩍 들었다. 10초 간 음소거 모드로 머리채를 쥐어 뜯다가. 애써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잔뜩 성이 난 담당 프로듀서에게 용기내어 전화를 걸었다.
”아니! 올 필요 없고! 구성안만 보내요, 당장”
그날 이후로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던 모양이다. 가뜩이나 살갑지도 않은 초짜작가 주제에 촬영 시간이 다 되었는데 나타나지도 않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는 없었을까. 딱 그만큼의 너그러움도 허락할 수가 없었나.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생방송을 마치고 작가실로 걸어가는 컴컴한 복도에서. 초겨울의 흐린 노을빛이 창가로 고개를 내미는 어수룩한 저녁에. 스치다 마주친 책임 프로듀서가 말했다. 퇴근 중이던 그가. 그것도 지나가는 어투로 툭 건넨 한 마디.
"아.. 그..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됩니다"
누구에게나 퇴사의 기억은 쓰리고 아플 테지만. 그래도 그건 좀 너무했다. 그렇게 쫓아내듯 내보내는 건 아니지. 적어도. 다른 직원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벌 세우듯 선 채로 그러는 건 심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실례가 맞다. 담배 냄새 나는 휴게실이라도 데려가서 자판기 커피라도 한잔 뽑아주면서 말했어야 했다. 나는. 딱 그만큼의 배려를 원했다. 단돈 200원도 아까울 정도로 그렇게 형편없는 작가가 아니라면. 최소한의 격식은 차렸어야 마땅했다. 그때 나는 그 ‘최소한’의 너그러움도 받지 못했다.
너그러움.
인생의 비를 맞는 이들에게
누군가의 사소한 배려보다
절실한 제스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