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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Oct 23. 2022

비는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더라

intro.

비가 내린다


뜨거운 머리 위로

처진 어깨 위로

비루한 발등 위로

 

하염없는

빗물이 쏟아진다


오늘 내리는

이 비는


반짝 소나기려나

부연 안개비려나

거센 장대비려나  


볕을 머금은

여우비라면 어떨까


긴 가뭄을 해갈할

단비라면 어떨까  









그런 날이 있었다. 예고 없이 비를 퍼붓던 날이.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더라. 그럴 땐 도리가 없다. 그저 젖는 수밖에. 여민 마음을 풀어헤치고 온전히 적시는 것 외에 무슨 방도가 있을까.


그저 걷는다. 아득한 빗속을 헤매인다. 어떤 비는 솜털처럼 보드랍고. 어떤 비는 칼날처럼 찌른다. 심장에 콕콕 우박이 박힌 자리. 맨홀처럼 움푹 파인 그 자리를 힘겹게 돌아본다. 세상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지만, 상처가 다 아물어도 아픔은 남는다.


이상하리 만큼 아무 일도 없는 날. 그런 날엔 실없이 불안이 온다. 그래서일까. 웬만큼 힘든 시기도 지났고, 이만하면 별 일 없이 산다 싶은데.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날에도 이 놈의 몹쓸 무의식은 기어이 과거의 어떤 날로 나를 끌고 간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제 자리. 기어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날처럼 비를 맞는다.



"비야 비야 오지 마~ 다른 날 다시 오렴~

나는 놀고 싶어~ 비야 비야 오지 마~"



조그마한 입술이 흥얼흥얼. 옆에서 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비야 비야 오지 말라고. 다른 날 다시 오라고. 대책 없이 말간 얼굴로 나를 붙든다. 멈추지 않는 비는 없다고. 그러니 이제 다 괜찮다고. 꼭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우산이 생겼다.

비 그친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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