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이맘때 마민카식당은 초록의 정기로 물든다. 담쟁이덩굴의 짙은 생명력이 옅은 하늘색이었던 건물의 외벽을 감쪽같이 덧칠해 버렸다. 줄기마다 매달린 잎사귀들이 바람에 펄럭일 때는 살갗에 붙은 털들의 군무처럼 곱게 일렁인다. "초록을 입은 건물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아요." 라고, 수빈이 말했었다. 그날 그녀는 하얀 원피스에 커스터드색 스니커즈를 신고 테라스 주변을 거닐면서 그토록 싱그러운 감탄사를 들려주었다. 생동력 넘치는 봄의 마민카,라니.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해국은 내심 기대하고 있다.
도브리 덴 (Dobrý deň)
안녕하세요~
이제 막 식당 안으로 들어선 손님 옆에는 도베르만 핀셔 한 마리가 늠름하게 서 있다. 대형견의 호위를 받으며 입장한 현지인은 짧은 머리의 젊은 남성으로 보이는데, 견주의 손에는 서너 번은 족히 돌려 감은 듯한 목줄이 뭉치로 들려있다. 음식점에 있는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줄을 팽팽하게 말아쥔 탓에 용맹한 대형견이 강아지처럼 온순해졌다.
"앉을 자리가 있나요?"
손님이 물었다.
"네, 그럼요. 빈자리 중에 편하신 곳으로 앉으시면 되고요. 테라스에도 자리는 있습니다."
나준이 현지인에 버금가는 체코어를 구사하며 응대한다.
"일행이 있으니 테라스가 좋겠네요."
손님이 반려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앉아 계시면 이 친구 물그릇도 같이 준비해 드릴게요."
때마침 주방을 빠져나온 해국은 눈앞의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고 녀석, 귀가 참 잘생겼네~' 하고 속으로 감탄하면서 카운터로 걸음을 옮긴다.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에는 흰 눈이 소복한 겨울이었는데 오늘은 봄의 절정에 와 있다. 그러고 보니, 체코에서 식당을 운영한 지도 어느새 반년이 넘었다. 지금껏 마민카식당을 다녀간 손님들은 모두 몇 명일까. 반려견 손님들만 줄 세워도 어림잡아 500여 마리는 되지 않을까. 알고 보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만약 해국이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의 마민카식당은 없었을 것이다. 식당뿐 아니라 카페나 펍, 빵집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자영업을 하려면 반려견 동반출입 문화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유럽인들은 어디든 반려견과 함께 다닌다. 쇼핑몰에도 데려가고 기차역이나 공항에 갈 때에도 스스럼없이 동행한다. 개와 함께하는 생활은 그 시작을 알기 어려울 만큼 아주 긴 시간 동안 뿌리 깊게 자리해 왔기에, 이방인들도 유러피안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나준은 마민카식당에 최적화된 직원이다. 동물 애호가이면서 영어에 체코어까지 능통하니 오너(owner)인 해국의 입장에서는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기분이랄까.
"나준아, 넌 유럽 체질인 것 같다. 그런 소리 자주 듣지?"
해국이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다, 말 속에 은근한 칭찬을 담아서.
"예, 뭐."
그러나 나준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
"너도 내가 아는 동생처럼 부모님 따라 어릴 때 온 건가?"
해국은 나준의 태도가 평소 같지 않다는 걸 느꼈지만 이미 시작한 대화를 멈출 수가 없어서 한번 더 물음표를 던진다.
"어릴 때 온 건 맞는데, 전 혼자 왔어요."
나준은 '혼자'라는 말에 강세를 주며 담담하게 해국과 눈을 맞춘다.
"혼자 왔다니?"
보통의 대화는 물음표로 시작해 마침표나 느낌표로 끝나게 마련인데, 오늘은 의도치 않게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 해국도 이런 식의 질문 세례를 퍼붓는 자신이 스스로도 마뜩잖지만 공은 이미 나준에게로 넘어갔다.
"저 입양 됐거든요."
일터의 고용주는 직원의 신상을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초보사장인 해국은 이런 쪽으로는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 일평생 밥장사를 하신 어머니 슬하에서 식당밥 먹고 자랐다 해도, 옆에서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1과 100의 차이임을 여실히 깨닫는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 해에 첫 직업이었던 9급 공무원의 자리도 다른 이에게 보내주었다. 그 길로 해국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초기 몇 년은 프라하에 있는 로컬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남의 밑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눈칫밥 먹으며 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부분을 맡던 담당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책임자가 되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해국은 아직도 사장님이니 고용주니 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것처럼 간지럽다.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어서 타고난 가난의 DNA와 을의 에티튜드 같은 것들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 밧줄처럼 해국을 칭칭 휘감고 있다. 겸손을 표방한 쭈글이의 면모는 때때로 반대의 기질을 동경하는 쪽으로 발현되곤 하는데, 몇 달 전 나준과의 첫 대면에서도 그랬다. 녀석이 SNS에 올린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왔을 때, 해국은 나준의 밑도 끝도 없는 당돌함에 홀린 듯이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저 정도의 패기라면 믿고 맡겨봐도 되겠는 걸.' 하는 판단이 직감적으로 작용했던 거다. 더구나 그가 내민 이력서도 호감을 배가시켰다. 초중고 모두 프라하에서 다녔고 현재는 체코의 명문대인 카를로바 대학교 의과대학의 휴학생 신분이라는 것. 겉모습은 누가 봐도 안경 쓴 샌님인데 내실은 누구보다 화려하고 탄탄했다. 그래서 끌렸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꺼려지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고생이 뭔지도 모르고 컸을 텐데 식당의 허드렛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염려했던 것이다.
"정말 여기에서 일을 하겠다고요?"
"네, 허락해 주신다면요."
"아니, 왜요? 그러니까 내 말은...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어 보인단 말이죠."
당시의 해국으로서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금수저 친구에게 이 일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첫째, 한식에 진심입니다. 한때 닉네임도 한식러버였거든요. 쭉 외국에서 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접했지만, 영혼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음식은 한식뿐이었습니다. 오버 아니고 진짜로요."
"프흡. 아, 미안합니다. 비웃는 게 아니고요. 영혼의 허기라... 나이도 어린 친구가 그런 표현을 쓰는 게 놀라워서 그래요. 진지하게 듣고 있으니까 계속해보세요. Keep Going!"
"네, 그럼 저도 시리어스하게 말씀드릴게요. 제가 좋아하는 한국 속담이 있는데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제 인생의 모토거든요. 휴학을 결심한 것도 경험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이대로 진로를 확정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요. 사는 게 너~어무 너무 신나고 재밌거든요."
"사는 게 재밌다... 아니, 태클이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괜찮습니다. 친한 녀석들도 대체로 그런 반응이라서요. 근데 저는 진짜 그렇거든요. 세상 모든 일이 다 궁금해요. 살아있다는 건... 축복이잖아요. 그리고 저에게 이런 축복을 준 베이스가 코리아니까요. 제가 태어난 한국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게 무진장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한식인 거고요. 음,으음! 그래서 말인데요. 이미 다른 지원자를 채용하신 게 아니라면 그 일,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준은 그냥 저스트 하나준이다. 패기 하나로 뽑힌 마민카식당의 유일한 직원이자, 한식이면 사족을 못 쓰는 여전한 한식러버다. 일할 때는 똑소리 나지만 틈틈이 실없는 소리로 해국의 핀잔을 듣는 스물 한 살 한국계 유럽인이다. 그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해국은 무용한 대답 대신 나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나준은 카운터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메뉴판들을 정리하면서 해국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다 다시 입술을 달싹인다.
"지금 사장님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가 맞혀볼까요?"
"네가 내 생각을? 예, 어디 그럼... 들어나 봅시다."
"입양아 이 녀석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게 맞을지 아니면 최대한 아무 일도 아닌 척 태연히 넘기는 게 맞을지 심히 고민되시죠?"
"노우. 아닌데? 둘 다 아니올시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야, 인마. 입양 됐으면 그 후로 줄곧 부모님이 계셨을 거 아냐.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완벽히 혼자인 내가, 가족이 있는 널 위로할 입장이겠냐."
"……"
"이제 상황 파악 끝났지? 그럼 그런 요상한 눈으로 보지 말고 저기 창가 자리에 계신 흰 수염 신사분에게나 가 보시죠, 하나준 직원님."
해국은 잠시 쭈뼛거리다가 자리를 뜬 나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입양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토해낸 하나준과, 사는 게 너무 신나고 재밌다는 하나준. 그 두 얼굴이 저만치 걸어 나가는 한 청년의 등 위에서 하나로 겹쳐진다. 나준에게는 나준을 있게 한 기쁨과 슬픔, 감사와 회한이 있을 것이다. 그의 과거를 아는 것이 식당을 운영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그의 과거는 그의 것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건 그건 오롯이 그의 몫이다. 해국이 나준의 고용주가 되었다고 해서 그의 인생에 참견하거나 제멋대로 판단할 자격까지 생긴 건 아니다. 다만, 들어줄 수는 있다. 그가 무엇이든 말하고 싶을 때가 오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경험자로서, 그저 귀를 열어 들어줄 것이다. 어쭙잖은 위로나 가벼운 조언으로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사장님, 사장님! 흰 수염 아저씨가요..."
나준이 종종걸음으로 돌아와 해국에게 고한다.
"쓰읍. 너, 또!"
잠자코 듣던 해국은 '아저씨'라는 대목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제동을 건다.
"아니, 손...님께서요. 주문할 때 파스타는 없냐고 물으셨던 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장 유사한 메뉴로 소고기잡채를 추천했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저기 보세요. 접시까지 씹어드실 기세라니까요. 추가로 포장 주문까지 받았습니다. 헤헷."
식당을 열고 직원을 들이고 음식을 만들어 팔고. 영업은 분명 비즈니스의 영역이지만 비즈니스를 가능케 하는 건 사람이다. 사람의 소관이다. 관계는 까다롭고 소통은 어렵지만, 까다롭고 어렵다고 해서 건너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해국은 기록한다. 해국의 영업일지에는 그날그날 다녀간 손님들의 반응이 적힌다. 좋은 반응도 나쁜 반응도 있는 그대로 쓴다. 일지에는 손님란과 더불어 직원란도 있다. 하나준 직원과 일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도 글로 남긴다. 직원의 업무 만족도를 끌어올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직원과 우호적인 수평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고용주로서 발언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고찰도 생각나는 대로 텍스트화 한다. 식자재를 공급받는 거래처들도 목록별로 기재하고 거래처 담당자들의 특징이나 성향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메모한다.
일례로, 육고기를 실어 나르는 필립은 배달을 올 때마다 몸에서 달큰한 고기 패티patty 냄새가 나길래 "이 맛있는 냄새는 뭔가요?" 라고 물었더니 "아, 많이 납니까?" 하면서 양팔을 번갈아 코로 가져가 킁킁 댔다. 멋쩍은 웃음 속에 버무린 말은 "오면서 햄버거집 드라이브 스루로 치즈버거 세 개를 주문해서 달리는 동안 신나게 먹었어요. 도축장에서 여기까지 차로 45분 정도 걸리는데요. 그걸 먹으면서 오면 일하러 오는 게 아니라 어디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기분이 들거든요." 였다. 그 말을 들은 해국은 "그렇겠네요. 버거 타임이 있으니 그 시간이 왠지 기다려질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치즈버거 세 개를 시키는 것보다 양이 많은 빅버거 하나를 주문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왜 굳이..." 라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필립은 "운전하면서 먹기에는 내용물이 흘러내리는 빅버거보다 얇은 치즈버거가 더 편하더라고요. 그렇지만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세 개 정도는 먹어줘야 포만감을 얻을 수 있답니다. 새로운 포장지를 하나씩 벗겨낼 때마다 느껴지는 설렘은 덤이고요." 라고 천진하게 답했다.
그 후로 해국은,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처럼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 오면, 필립에게는 햄버거집에서 발행하는 기프트카드를 보내거나 수제 버거하우스의 외식권을 선물한다. 해국이 필립에게 보낸 햄버거에는 노동의 피로를 녹이는 포만감과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만 같은 낭만적인 기분까지 담겨 있다. AI는 할 수 없는 사소한 관심과 섬세한 챙김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 마민카식당을 복되게 한다고 해국은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가능케 하는 동력은 역시 기록하는 습관, 그의 영업일지에서 비롯된다. 매출이 저조한 메뉴는 왜 저조했는지, 모든 결과의 원인을 분석한다. 한 장 한 장 불어나는 기록들을 넘기면서 개선할 점을 모색하고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 뭐, 말은 참 쉽지만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성가셔서 빼먹고 어영부영 넘기는 날도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해국은 불 꺼진 식당에서 낡은 장부를 펼치던 신애씨를 떠올린다. 불에 데고 칼에 베인 손으로 숫자를 그리다가 꾸벅꾸벅 조시던 그 시절의 어머니를. 고춧가루가 튀고 얼룩이 묻어 누렇게 변해 있던 그녀의 영업일지를 추억한다. 수천 번 넘어지면 수만 번 다시 일어서던 나의 산. 나의 어머니. 작지만 강했던 그 여인을 생각하면 까짓 거, 못할 게 또 뭐가 있겠냐고 해국은 마음을 고쳐 먹게 된다. 칼도 총도 아니고 펜 하나만 잘 굴리면 내 공간을 지킬 수 있는데 그걸 왜 못하겠느냐고 자신에게 따져 묻는다. 너는 할 수 있지 않냐고. 고인이 된 신애 씨는 더 이상 밥을 지을 수도 낡은 장부를 채울 수도 없지만 살아있는 너는 뭐든 할 수 있다고. 해국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