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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Sep 29. 2018

임신 초기, 갑작스런 하혈에 대처하는 자세

미국 예비맘의 임신 이야기_임신 초기 (6주-7주)


생리 주기로 계산해 보았을 때 임신 6주 며칠 즈음을 지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샤워를 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는데 갈색 출혈이 생긴 것을 보았다. 배가 아팠다거나 다른 하혈의 징후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임신 초기 출혈은 안 좋은 조짐일 수밖에 없을 텐데, 싶어 걱정스런 마음에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나와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해 보는데 겁이 나서 손이 덜덜 떨렸다. 식은땀이 자꾸 나서 얼굴을 한번 더 씻느라고 화장실 거울을 보았는데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런 얼굴까지 보고 나니 더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려서 혼자서는 설 수도 없을 것 같아 남편에게 얼른 집으로 들어오라고 연락을 한 후 자리에 누워 일단 쉬었다. 


이날 밤은 한국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던 날이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국가적인 기쁨도 개인의 슬픔 앞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 마음껏 신기해하거나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인터넷에서 모아 본 정보에 의하면 갈색 출혈은 이미 자궁 내에 고여있던 피가 나오는 거라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안심이 되어 이 날 밤엔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제발 내일이 되면 씻은 듯 증상이 없어지길...


그런데 다음날 아침, 도시락을 싸려고 주방으로 나가려는데 순간, 왈칵하고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절대 모를 수 없던 그 선명한 감각. 그래서 당장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접수 담당 직원에게 증상을 대강 설명하였더니 조금 있으면 간호사가 직접 전화를 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초조하게 한 시간여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울리던 전화벨.


출혈이 있었다고 하니, 언제부터 출혈이 있었는지, 혈흔의 색이 어떠했는지 (갈색이었는지 붉은색이었는지), 혈액의 양이 어떠했는지 (그냥 티슈에 묻어나는 정도인지, 속옷에 흔적이 남았는지, 아니면 패드를 적실 정도인지) 등을 물었다. 나는, 어젯밤부터 출혈이 있었는데 혈흔의 색이 어젯밤엔 갈색이었으나 오늘 아침에는 붉은색으로 변했다는 것과, 패드를 아주 적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패드를 해야만 하는 혈액양이라고 최대한 자세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당장 오늘 진료를 받으러 오라는 거다. 오후 3시에 진료를 잡아 주겠다고. 9주가 넘어서야 있을 첫 진료 날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며 장난처럼 투정을 부렸었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병원에 가게 된 거다. 그래도, 이런 이유로 일찍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오버스럽게 걱정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마음속으로 아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최악의 경우까지를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했고,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거의 아무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상태였다. 임신 초기 유산이 되면 심하던 입덧 증상이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는데 기분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하혈을 보았던 지난밤부터 입덧 증상이 사그라든 것 같기도 하고... 온통 불길한 징조들 투성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내가 너무나 안쓰러웠던지, 아이가 잘못되었다 해도 지금은 이미 다 정해진 결과일 테니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말아라, 마음을 편히 갖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아이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또 기회가 있겠지 나는 네가 가장 중요하다, 등등 갖은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여전히 무척 불안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마음 담긴 따뜻한 말들을 듣고 있으려니 그래도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이런 연유로 예정에 없이 정확히 7주 1일 되던 날 병원에 가서 질초음파를 했다. 


나와 같은 이유로 병원에 조금 일찍 진료를 받으러 간 임산부들의 이야기를 보면, 보통 생리 주기로 계산한 주수는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아서 6주나 7주 정도로 생각하고 초음파를 해 보았는데 정작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거나, 심장이 뛰는 걸 보지 못했다거나 하는 일들도 많은 듯했다. 그러면 별 수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한 두 주를 더 기다렸다 다시 초음파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정말 천만다행으로 생리 주기로 계산한 주수가 꼭 들어맞았다. 이날 우리는 초음파를 통해 7주 1일 정도 크기가 되는 아이의 모습과 그 심장 박동까지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초음파를 해 준 직원 (미국 병원에는 초음파만 해주는 테크니션이 따로 있다)으로부터 아이의 상태가 아주 좋고 심장 박동수도 매우 정상적이라는 의견을 들었을 때 (So far so good!) 너무나 안심이 되어 남편의 손을 꼭, 정말 꼭 잡아쥐었다.


처음 초음파를 했던 병원 내 Diagnostic Imaging 실


초음파를 마치고 난 후, 의사의 진료가 있었다. 급하게 당일 예약을 잡느라 담당의가 아닌 남자 의사와 진료를 봤는데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친절했던 이 의사는 임신 초기의 출혈은 일반적인 현상이며 다행히 태아는 아주 건강하다고, 처방해 주는 prenatal vitamin을 하루 한알씩 챙겨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말해주었다.


이때, 의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이의 심장 박동을 확인했는지 여부였다.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심장 박동을 확인한 경우 유산의 확률은 10% 이내로 떨어진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출혈은 사흘 정도 지속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정말 그 말 그대로 사흘 정도 후에 출혈은 깨끗하게 사라졌고 이후 29주 차인 지금까지 아이는 뱃속에서 아주 건강히 잘 자라고 있다.


이 날 이후로 임신을 계획했던 걸 후회한다느니 하는 생각은 나는 결코 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내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무척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임신 전에는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하는 식의 질문을 남편에게 하기도 하고 스스로 답을 생각해보기도 하였는데 막상 이런 일을 겪게 되니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건강하게만 태어나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게 엄마의 마음 같은 건가. 아직까지도 모성이랄까, 아무튼 보기만 해도 무조건 존경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단어들의 의미를 눈꼽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때만큼은 내 뱃속의 이 작은 생명을 어떻게든 소중히 품어야겠구나, 생각하며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마음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테스트로 확인은 했지만 영 확신이 들지 않아 임신 사실은 남편과 나 사이의 일로만 두었었는데 직접 아이의 심장박동을 눈으로 보고 나니 조금은 실감이 나기도 해서 이 날 밤, 양가 부모님께도 임신 소식을 알렸다. 너무도 기뻐하시는 모습에 그동안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많이 기다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조금 쉬어간 입덧 덕분에 오랜만에 먹을 수 있었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thai food


다음 날부터는 정말 누가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세 입덧 증상이 다시 되살아났지만,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니까 이런 거겠지, 하는 생각으로 눈 앞의 힘든 상황을 조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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