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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Sep 25. 2018

임신을 확인하던 날, 그리고 시작된  입덧

미국 예비맘의 임신 이야기_임신 초기 (-6주)


작년 연말부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많은 대화를 하긴 하였지만 중단되면 어찌 될지 모르는 내 커리어 문제도 그렇고, 선뜻 마음을 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 초 한국 방문을 계기로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래, 그랬지만 사실은 이렇게 덜컥 임신이 될 줄은 몰랐다. 다들 계획을 하고 1년 정도는 지켜보다가 임신이 되거나 더 기다려도 안되면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기도 한다고 하길래 우리도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할 줄 알았지. 남편이나 나나 둘 다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임신을 계획했다 해도 실제로 임신을 하게 되는 건 조금 더 먼 미래일 줄 알았다.


이제는 기억도 까마득한 어느 봄날, 이상하게 몸이 으슬으슬 춥고 감기 기운이 있구나 생각하며 며칠을 보내다가 불현듯, 설마 임신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생각은 하면서도 술도 줄이고 마음의 준비를 (아주 조금) 하고 기다리다가 예정일이 이틀 지나 해 본 Home Pregnancy Test. 한 번도 구입해 본 적 없어서 마트에 가서 어디에 있는지를 한참 찾아야 했다. 우리는 약과 영양제가 모여있는 코너에 가서 한참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홈 프레그넌시 테스트는 Baby Birth Control 쪽, 콘돔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콘돔으로 baby birth control에 실패하면 테스트기를 사다가 해보라는 건가? 지금은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처음엔 의외였던 테스트기의 위치.


마침 일요일이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리 사 둔 테스트기를 가지고 화장실에 갔다. 혼자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데 결과는…, 양성. 정말이지 길었던 겨울이 끝나가며 이제는 정말로 완연한 봄이구나, 싶었던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여보, 두 줄인데?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약간은 울듯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나와 남편에게 했던 첫마디. 반면 그에 대한 남편의 첫마디는?


 뻥치지 마!


였다. 말 그대로, 우리 부부에겐 정말 뻥 같은 일이 일어난 거다.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임신했다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던진 말이 뻥치지 마! 일 수 있냐고, 이후 나는 남편을 장난스레 많이도 놀렸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까지 하고서야 뻥이 아님을 확인한 남편은 다시 옷을 챙겨 입고는 다른 테스트기를 하나 더 사 오자며 나갔다. 그리고 재확인. 역시 양성이었다. 생리 주기로 계산해보면 5주 하고도 3일이 된 시기. 주기로 계산한 주수는 나중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면 그때의 아이 크기로 다시 판단해서 바뀐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이 주수가 꼭 맞았다.


처음엔 가장 저렴한 walgreens 브랜드 제품으로 (좌), 두번째에는 가장 정확하다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우) 다시 사 보았던 Home Pregnancy Test


홈 프레그넌시 테스트로 임신을 확인한 이후의 한 주는 병원 예약을 잡느라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첫 진료를 잡는 시기가 꽤 늦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에 맞는 병원은 당연히 일하는 대학의 병원이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으려니 보통 8에서 10주 사이에 첫 예약을 잡는다고 했다. 근데 내가 진료를 받아야 할 8에서 10주 사이에 빈 시간이 없다며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 거다. 3일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아 다시 걸어보았더니 역시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 밖에… 처음 전화를 하고 딱 일주일이 되던 날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첫 진료 날짜는 9주의 막바지에 걸친 9주 6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실 병원 예약을 하기 전부터 미국에서는 미리 테스트기로 임신 확인을 했다고 바로 예약을 잡아주지 않고 10주 가까이까지 기다렸다 오라고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주 여유롭게 1~2주 기다렸다 병원에 전화해도 괜찮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알아보니 처음 병원에 가는 날짜는 10주 가까이에 잡아 준다 해도 대부분의 병원들이 아주 바쁘게 예약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전화해서 예약을 잡아야 한다고 한다. 임신을 확인한 때에 바로 병원에 전화를 하면 마지막 생리가 시작한 날짜를 묻고 그 날짜를 근거로 내가 첫 진료를 받아야 할 날을 계산해서 알아서 예약을 잡아준다. 그러니까 나처럼 아주 여유 있다고 생각하면서 굳이 병원에 전화하는 것을 미룰 필요는 없다.


임신을 확인하고, 첫 진료 날짜를 잡고 난 후에도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중에는 너무 이상하고 믿음이 안 가서 임신을 확인한 지 딱 1주일 후 일요일에 남은 테스트기로 그냥 한 번 더 테스트를 해 보기까지 했다. 


남은 테스트기로 임신을 다시 한번 확인했던 날, 여전히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벚꽃축제에 가던 길


테스트기는 계속해서 임신이라고 말하는데, 몸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변화가 없고. 이렇게 확신이 가지 않는 상태로 첫 진료 날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생각하던 찰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 이름도 유명한 입덧.


테스트를 다시 해 보았던 바로 그다음 날 아침. 이 날은 눈을 뜨면서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도시락을 싸는데 헛구역질이 나더니 빈 속에 겨우 마신 오렌지 주스를 그대로 토해냈다. 계속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그나마 먹은 쿠키 한 조각까지 토해내고 나서는 그대로 앓아누워버렸다. 입덧을 다루는 방법을 몰라 정말 고생했던 첫 며칠이었다.


남들은 어떻게 하나 찾아보기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입덧을 다루는 방법을 어찌어찌 찾아갔다. 속이 비면 더 울렁거리니까 조금씩 뭘 먹어가며 속이 비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단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군것질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고 하루 두 세끼 밥만 먹던 사람이라 자꾸 입에 뭘 달고 먹어야 한다는 것이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말 그대로 속이 비어가려고만 하면 배고픔보다 울렁거림이 먼저 찾아와 나를 힘들게 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오이와 토마토 정도. 다른 이들의 후기들을 읽고 나서야 크래커와 두유까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차가운 면 종류만 연신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찬 물에 말은 찬 밥 정도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한 밥을 찬 물에 말으면 금세 미지근해져 먹지 못했기 때문에 애써 한 밥을 일부러 냉장고에 넣어 식혔다가 먹었다). 2주 정도 심각하게 나를 괴롭히던 입덧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바로 다음날에 다시 찾아오는 식으로 장난질을 쳐대기도 했다. 하지만 씻은 듯 괜찮은 어떤 날들에는 고기도 구워 먹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으며 그나마 기쁨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식탐이 아주 강한 편은 아니지만 살면서 한 번도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며 살아본 적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아주 큰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바라, 이렇게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 특히 먹고 싶은 음식이 아무것도 없고 입덧을 가라앉혀 주는 음식만을 억지로 입 안에 구겨 넣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힘들었다. 먹기 싫은 크래커를 입안으로 억지로 집어넣다가 울음이 왈칵 터지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가 태어나 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들이 더 크게 느껴져 후회가 밀려오는 적도 많았다. 이제 우리 여행은 다 간 거야? 나는 이제 오로라는 못 보는 건가. 칸쿤은 이제 죽어도 못 가겠지?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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