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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mie Oct 02. 2018

미국 병원에서, 임신 후 첫 진료받던 날

미국 예비맘의 임신 이야기_임신 초기 (7주-10주)


임신 초기 (6주-7주) 출혈로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난 후, 다행히 몸 상태는 안정되어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비록 입덧은 점점 그 정도를 높여가며 나를 괴롭혔지만... 


어떻게 기다리나 싶었는데 시간은 결국 흘러 지난 5월의 어느 날, 드디어 내 담당 의사에게 첫 진료를 받게 되었다. 항상 이름만 봐 왔던 내 담당 의사는 아주 경험이 많아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여자 의사였다. 아주 친절하고 느긋하면서 또박또박한 말투로 내가 받게 될 진료에 대해 설명해 주는 점이 정말 좋았다. 나중에 병원을 계속 다니다가 보니 내 담당 의사의 얼굴이 커다랗게 나온 광고가 병원 벽에 몇 붙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업무를 보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병원을 홍보하는 광고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된 모양이었다. 괜히 내가 뿌듯했던!


지난번 예정에 없던 진료에서 질 초음파를 했었는데, 사실 그 느낌이 그리 좋지 않아서 이번에는 초음파를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될지가 참 궁금했었다. 보통 8주가 넘어가면 복부 초음파로도 아이가 잘 보인다고 해서 9주가 넘은 상황에서의 첫 진료에서는 복부 초음파를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잔뜩 했던 것도 사실. 결국 결과는 복부 초음파를 했다! 는 것이지만, 그렇게 다른 이들의 병원 방문 후기들을 찾아봐 가며 걱정했던 일이 무색하도록 실제 진료는 질 초음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간호사와 함께 몸무게와 혈압을 측정하고 의자에 앉으려는데, 간호사가 1회용으로 된 (두꺼운 화장지 같은 재질의) 조끼 같은 것과, 같은 재질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커다란 무언가를 주면서, 상의와 하의, 속옷까지를 모두 탈의한 후 받은 조끼를 입고 나머지 것으로 하반신을 덮고 있으라고 했다. 하의를 탈의하기 싫어서 질 초음파가 싫었던 건데, 이번엔 상의와 하의 모두 탈의라니! 듣고 있던 남편이 더 상황이 궁금했던지 간호사에게 내가 어떤 진료를 받게 되는지를 물었더니, 간호사는 초음파랑 뭐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다양한 것.... 이 대체 뭘까?


조금 두려운 마음을 안고 시키는 대로 한 후 진료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렸더니 담당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의 첫인상은 앞서 말한 그대로. 처음 만난 거라 편치 않은 상황에서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미국 병원에는 내 이전 의료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이 날 펩스미어 (Pap Smear)를 해야만 했기에 하의를 탈의했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다른 검사를 위한 샘플을 한번 더 채취하기도 하였다. 상반신으로는 의사가 손으로 가슴에 멍울 같은 것이 잡히지 않는지를 보고, 숨 쉴 때 배와 등 같은 곳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문제가 없는지 등등을 아주 자세히 체크하였다. 검사를 하는 중간중간에 상태가 아주 좋다,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등 계속해서 안심되는 말을 해주었다. 대략 20분 정도 되는 이러한 검사들이 모두 끝난 후에야 복부 초음파를 통해 아이가 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하기 전에도 의사는, 내가 지난번 응급 상황으로 병원에 왔던 것을 알고 있고 그때의 진료 기록을 다 보았는데 아이의 상태가 아주 좋더라, 그래도 오늘도 복부 초음파로 한번 더 확인해 보자, 하며 내 상황에 대해 본인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득 심어주었다. 지난번엔 응급 상황에서의 진료여서 그랬는지 초음파 사진을 출력해 주거나 하지는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가장 잘 나온 초음파 사진을 출력해 주어 받아올 수 있었다.


아직은 뭐가 뭔지... 처음으로 받아 본 초음파 사진


이 정도까지 몸으로 해야 하는 진료가 모두 끝이 나자, 의사는 잠시 나가 있을 테니 옷을 원래대로 갈아입은 후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진료실 문을 살짝 열어두라고.


이후에는 남편과 나란히 앉아 가능한 유전질환이나 가족 병력에 대한 상담을 진행했다. 병명을 하나하나 나열해 가며 가족들 중 그런 병력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지를 묻고, 또 내가 기타 다른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여부 등 알아야 할 의료 정보들을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모두 컴퓨터에 입력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평소 일상생활이야 영어로 어찌어찌 해 낸다 하여도 병원에서는 소통이 조금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병명 같은 것은 전혀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그런 우려는 전혀 할 필요가 없었나 보다. 의사는 조금이라도 어려운 단어가 나올라 치면 정말이지 쉬운 말로 다시 한번 풀어 설명해 주었다. 내가 듣고 있는 언어가 영어였는지도 모를 만큼 편안한 시간이었다.


이 날 New OB Packet이라는 것도 받았는데 안에는 임신 중 궁금할 수 있는 사항이나 주의해야 할 점들이 꼼꼼히 적혀있는 책자 하나와 앞으로 내가 받을 검사들에 대한 설명이 적힌 팸플릿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센터에서 임신 중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이나 프로그램 등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는 팸플릿들이 있었다. 의사는 팸플릿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설명해야 할 것들을 설명해주고 내가 집에 가서 혼자 읽어보면 좋을 것들은 그렇게 하라고 표시해 가며 모두 훑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신 11주에서 13주 사이에 해야 하는 초기 기형아 검사는 다른 시설로 가서 해야 하는데, 직접 예약을 잡을 수 있는 방법까지 잘 안내해 주었다.


필요한 정보들이 가득한 New OB Packet


이렇게, 진료가 모두 끝이 나는 데까지 진료 시간만 딱 1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임신 초기에는 정기 검진을 4주에 한 번씩 받으면 되는데, 다음번 진료 날짜를 직원과 얘기해서 잡은 다음에 병원 지하에 있는 Lab으로 가서 혈액과 소변을 채취해야 했다. 정말이지, 이미 지쳐버린 기분...


다음 진료 날짜를 잡은 후 Lab으로 가서, 소변을 먼저, 그다음 혈액을 채취. 근데 무슨 검사를 그렇게 많이 할 건지 혈액을 8개 정도의 튜브에 아주 가득 채우는 거다. 한국에서도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때 혈액을 채취해 본 경험이 여러 번 있지만 이렇게 많이 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맙소사.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나중에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는 병원 내 웹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내가 한 검사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New OB blood panel (Maternal Blood type and Rh factor, Antibody screen, Blood count, Rubella status, Syphilis screen, HIV antibody, Hepatitis B surface antigen and baseline urine culture), Pap smear and chlamydia/gonorrhea testing


혈액을 그렇게 많이 가져간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정말 많은 검사를 했구나. 이러한 검사는 각각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모든 결과가 나온 다음에 의사가 종합적인 견해를 적어 내가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병원의 의료 시스템에 아주 만족!


아무튼, 기대보다 긴장과 걱정이 더 되었던 첫 진료는 이렇게 끝이 났다. 


정말 진료 시간을 잡기가 힘들었는지 첫 진료는 오전 8시 30분이었는데, 대기 시간 등을 모두 포함하니 시간이 꽤 흘러서 병원을 나올 때는 이미 이른 점심을 먹기에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배가 몹시 고팠기 때문에 좋아하는 브런치 카페에 가서 남편과 달콤한 브런치를 즐겼다.



너무 이른 아침부터 정신없이 일들이 흘러가 버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눈 앞에 따뜻한 카푸치노 (비록 디카페인이기는 하지만) 한 잔이 놓이자 비로소 큰 숨이 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휴, 이제 다 끝났구나.


물론, 이제 끝이기는커녕 시작일 뿐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후 병원에서의 진료들은 첫 번째 진료에 비하면 정말이지 너무 쉬운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 날 내가 큰 산까지는 아니라도 큰 돌부리 하나 정도는 잘 넘었던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여기까지, 우리 부부가 아이를 처음 만나 어찌할 바 모르며 정신없이 보냈던 임신 초기 약 5주의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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