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가지

나는 언제 분노하는가?

by 유지현


인스타그램 피드 속 나는 언제나 우아하고 밝다.
사람들은 내게, 미소가 온화하고 밝아서 좋다고 말한다.


갤러리 카페에서 멋진 포즈로 차를 마시는 모습,
우아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모습,
가족과 함께 활짝 웃는 모습,
책을 읽고 감상글을 쓰는 모습,
아이들과 너그럽게 소통하는 모습까지.

어쩌면 이런 내 일상이 타인의 부러움을 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모습은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 남긴 편집된 삶일 수 있다.

그 장면들 역시 분명 내 일상의 일부다.


나는 솔직하고 정직하게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우아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들 뒤에는, 가끔 악바가지처럼 분노를 쏟아내는 거친 나도 있다.


어떤 날엔 감정의 잠금장치가 풀려,
내가 바랬던 셀프 이미지가 무너지고,
분노로 가득한 마녀 같은 모습이 찍히기도 한다.


세 남자와 함께 사는 한 여자는,
렇게 우아한 여왕과 거친 마녀, 두 얼굴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이 차이를 받아들이려 해도,
살다 보면 말이 전혀 안 통해 속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악바가지를 퍼부으면,
화가 난 이유와 관계없이 나는 늘 가해자가 된다. 내 마음은 분명 피해자인데도.

결국, 누가 잘못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분노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나는 언제 분노하는가?

무례한 말과 행동,
비아냥과 깐죽거림,
함부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말투,
책임 회피와 슬쩍 남 탓으로 돌리는 태도,
타인의 의도대로 조종당했다는 느낌.

정리해 보면,
배려심 없는 이기적인 태도 앞에서 나는 분노한다.


사회에서는 그 분노를 참는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혹시 내가 가족에게 더 많은 배려를 기대했기 때문 일까?

우리 집 세 남자도 나와 같은 마음일지도.


문제는,

항상 먼저 배려해야 하는 사람이 엄마이자 아내라는,
암묵적인 ‘디폴트값’이 아닐까?


나는,
우아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내 모습 뒤에 숨은 욕망을 본다.
그 디폴트값을 깨고 싶은 욕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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