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진 창가에서, '나만의 빛'을 찾다

돌보면 예쁘고, 보고 또 보고 싶어지는 식물처럼.

by 유지현

외면하고 싶었던 날들


사무실 한켠에, 쪼끄만 나만의 정원을 만들어 두었다.

남쪽과 서쪽이 만나는 코너 창가다. 일부러 찾아와 보지 않으면 식물들을 온전히 볼 수 없는, 구석진 자리다.

업무변경이나 지사이동으로 떠나는 직원들의 책상에 남겨진 식물들, 그리고 서로 나눔을 통해 얻은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얼마 전 시간을 내서 미루고 미루던 분갈이를 했다. 매번 물만 주다가, 겉으로 봐도 작은 화분에 뿌리가 꽉 차 답답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식물들을 살짝 외면하고 있었다. 화분과 흙도 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 일하다가 '특별한 시간'을 내야 했다. 집에서 분갈이를 하고 식물을 재배치하려면 하루를 날 잡아서 하곤 했기에,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그런 시간을 내는 것은 더욱 엄두가 안 났다. 정확히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다른 일에 치여 신경을 못 쓸 때가 있다. 물주는 걸 잊고, 관심도 덜 해지면서 관리가 소홀해진다. 어느 날 생각나서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시들고 마른 잎과 함께 잎들은 제멋대로 자라 있고 주변은 흙과 물자국, 관리 집기들로 어수선하다. 마치 늦잠을 자고 빗질도 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방안처럼 꼭 그런 나를 보는 것 같아 한숨이 난다.


식물들에게서 게으름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짜증이 몰려온다. 밉상이 된 그들이 미워진 것이다. 그냥 저렇게 내버려 두다가, 죽어버리면... 그땐 버려버릴까? 하며 방임을 하고 싶은 고약한 맘이 스친다. 그리고 정말로 잠시 내버려 둔다. 그러면서도 미안함과 책임감으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식물은 늘 나보다 먼저 신호를 보냈다. 내가 지칠 때 먼저 흐트러졌고, 내가 외면할 때 먼저 시들었다.


돌보면 예쁘고, 예쁘면 보고 싶어지는


그러다 오늘이야! 싶은 날이 온다. 식물에 맞는 화분 짝을 생각하고 어떻게 재배치를 할지 고심한다. 계절에 맞게 베란다로 내보내고 들일 식물도 고려한다. 이렇게 분갈이를 시작하기 전, 나름 한참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사무실의 식물도 며칠 동안 틈틈이 기획해 두었다가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날 시간을 내서 정성스레 분갈이를 했다. 구석지고 눈에는 안 띄지만, 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남서향의 따뜻한 자리로 옮겨주었다. 전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서쪽 자리에 두었어도 그럭저럭 잘 자랐지만, 남서향 자리를 눈여겨본 뒤로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그들에게 더 좋은 환경에 자리 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동안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미워진 식물을 버리고 싶었던 때와는 달리, 어울리는 화분에 옮기고 가지와 잎을 다듬어 주고 나니, 자꾸 눈길이 간다. 일하다가 머리를 좀 식히고 싶으면, 구석진 정원으로 가서 뭘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둘러보고, 말도 걸고 이야기도 하면서 손질을 해준다.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깨끗하게 단장된 식물부터 보면, 청량감으로 마음이 행복하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나의 게으름의 냄새가 싫어질 때. 맘을 부여잡고, 긴 시간을 들여 식물과 함께하곤 했다. 흙과 배수에 좋은 각종 돌들을 버무려 마치 영양가 좋은 잡곡밥을 만들듯 준비한다. 화분으로 적절한 옷을 입히고 가지를 정리해 단장을 해준다. 정리된 가지가 아까울 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물에 담가 책상 위에 두거나 작은 화분에 담아 새 생명을 기다린다. 그러고 나면, 단장된 모습이 너무 예뻐 수시로 보고 관심을 듬뿍 준다. 나의 게으름 냄새는 어느새 사라지고, 웃음꽃이 핀 듯 싱그러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단장하면 예쁘고, 예쁘면 더 보고 싶고 잘 돌보고 싶다. 그러다 마음이 한번 틀어져 관리하지 않으면 미워지고, 안 보고 싶고, 버리고 싶어진다.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다. 어느 순간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마음은 금세 어두운 악순환 속으로 미끄러진다.


나만의 명당에서 찾은 빛


다행히도 나를 부스팅 하는 취미가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보다 나를 꽤 소중히 여겨왔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는다. 스스로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볶닥임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은 '나만의 빛'을 찾고자 하는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나만이 아는 나의 빛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의 시선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나만의 눈과 창이 생겼다. 눈으로 내 마음을 보고, 창밖에서 나의 감정을 바라보곤 한다.


남들의 시선이 쉽게 미치지 않는 구석진 창가지만, 가장 좋은 명당자리에서 따뜻한 햇살을 길게 받으며, 아름답게 피어날 꽃과 여러 빛깔의 잎들이 새순을 틔울 것을 기대하니 마음이 오래도록, 가만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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