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나의 분신이 아닌 것을.

엄마와 아들. 서로의 독립을 준비하며

by 유지현

"엄마, 그냥 들어가서 자, 부담스러워"

학원 갔다가 밤늦게 들어온 아들이 배가 고프다는 말에, 얼른 이것저것 챙겨주고 들어가면 그만인데.

나는 굳이 밥 먹는 아들 앞으로 바짝 몸을 기울인 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아들은 시크한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그래도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살짝 짜증반 미소 반을 섞은 표정이다.


아들이 잘 먹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아들이 먹지 않으면 나도 입맛이 없다. 표정이 안 좋을 땐, 혹시 차마 말 못 할 고민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조심스럽다. 속상한 상황이면, 그 맘이 느껴져서 안절부절 아들 방 근처를 몇 번이고 왔다 갔다 서성인다. 할 수 있다면 내가 감당해 주고 싶고, 그 힘든 맘을 내가 대신 이겨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아들이 어릴 때는 보호자로서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보호자이면서도 역할이 달라졌다. 몸이 성장만큼 스스로 감당해야 할 영역도 커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부터 '대신'은 없어야 더 건강하게 독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너의 일''나의 일'을 구분 짓고, 감정을 분리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들이 잘되면 내가 잘된 것 같이 기쁘고, 아들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플 수 없는 것이 속상하다. 그런 엄마가 더 힘들다며 밀어내는 그 맘을 알면서도, 나는 왜 서성거릴까.


대학생 큰 아들은 가끔 엄마의 잔소리에 화가 나면 "내가 알아서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실은 알아서 하지도 않으면서.. 아들만의 특별함인지 뭔지 모르지만, '생활지도'는 언제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생활지도이든 인생조언이든, 부모는 자녀가 앞으로 혼자 겪어내야 할 일이 첩첩인걸 안다. 실패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멋진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소망이 앞선다.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급한 마음에 잔소리로 그 바람을 대신하지만, 그 소리는 아들에게는 허공에 떠다니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먼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진작에 얘기했잖아..'라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소용없는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다.


나의 품을 떠나서 겪을 사소한 실수부터 실패, 수많은 성장의 경험을 온전히 감당할 아들을 생각하면——

나의 지난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것들을 알알이 새겨서,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는 무모한 욕심이 나를 더 괴롭히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50년 넘게 살고 있는 나조차도 매일 실수하고 실패하며 배워가고 있으면서, 왜 아들의 짐까지 짊어지려 하나. 그런 교만한 어리석음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자식은 나의 분신이 아닌 것을.

자꾸 아들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는 이 생각을 톡 끊어내고, 아들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줘야지.

날개짓에 걱정과 근심보다는 용기와 공감으로, 아들과 내가 서로에게서 건강하게 독립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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