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치료실에 부모와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때부터 나의 눈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아이의 시선과 표정, 행동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놓치지 않기 위해 나의 눈은 계속해서 레이저를 발사하고, 오른손은 거침없이 하얀 종이 위를 활보한다. 아이만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아이를 먼저 관찰하지만, 동시에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반응, 양육 및 의사소통 스타일 등을 파악하기 위해 소리 없이 분주하다.
언어치료사가 아이와 부모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이유는 바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이다. 물론 아이에게 진행되는 수많은 언어 및 말 검사를 통해 아이의 표면적인 언어 연령은 확인이 된다. 하지만 나는 검사 결과가 보여주는 수치가 그 아이의 모든 언어능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령에 따른 언어검사는 필수적이지만, 전부는 아닌 것이다. 다양한 언어검사와 동시에 반드시 부모와의 인터뷰, 아이의 주변 환경(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포함한 공공기관에서의 모습이나 교사 보고), 가정환경에서의 다양한 모습들, 또래 아동과의 관계 등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마지막으로 치료실에서 내가 관찰한 모습들을 종합해서 아이의 언어를 진단하게 된다. 여기서 부모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다. 아이의 성향이나 기질, 성장과정, 부모와의 관계, 부모의 양육관이나 가치관, 부모의 의사소통 스타일, 또래 아동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 너무나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엄마가 아이의 언어치료사가 되기 전 알아야 할 첫 번째!!
언어치료의 시작은 우리 아이의 말, 언어를 포함한 의사소통의 모든 것을 세심하고 집요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우리 아이의 현재 의사소통 단계를 이해하고 알 수 있다.
우리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선호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아이가 의사소통하려는 동기를 유발하는 상황을 조정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 아이가 어떤 감각을 통해서 자신의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아이의 행동, 시선, 오감각적인 것 모든 것이 포함된다. 지금부터 우리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보자. 익숙했던 풍경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아이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기록해보자.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세상과 대면할 때 주로 어떤 감각을 통해 학습하고 있는가, 아이의 기질은 예민한 편인지, 선호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어떤지, 우리 아이만의 특이점이 있는지 등등.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아이의 현재 의사소통 단계를 파악했다면 이번엔 부모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사용하는 말투, 어휘들, 문장 구조들부터 시작해서 아이와 대화할 때의 비언어적인 행동들, 시선, 자세, 리액션 등 엄마의 전체적인 의사소통 스타일을 파악하여야 한다. 엄마가 어떤 의사소통 스타일로 아이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는지 파악하게 되면, 어떤 것을 고쳐야 하고 또 어떤 것들을 더 강화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엄마가 아이의 언어치료사가 되기 전 알아야 할 두 번째!!
우리 아이의 현재 의사소통 단계를 이해하고 진단해야 한다. 우리 아이가 현재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거나 혹은 울거나 소리 지르는 것으로, 엄마의 손을 자신의 장난감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아니면 한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도와 욕구를 표현할 수도 있다. 먼저 나의 아이가 어떤 방법으로 세상과 그리고 엄마와 소통하고 있는지 기록해보자. 시선부터 발성이나 말소리까지 세세하게 예를 들어서 기록하는 것이 좋다(이 기록의 이유는 추후 언어 일지 기록 편에서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의사소통 단계란 크게 4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 '혼자 노는 게 좋아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아이는 혼자 놀고 싶어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표현해서 그들에게 나의 메시지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며, 아이의 의사소통 표현은 어떠한 의도를 포함하지 않는다.
둘째, '내 의도를 알아채 주세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아이는 엄마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잡아끌거나 데리고 가는 것으로 엄마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장난감과 같이 동기가 아주 강한 상황에서 특정한 몸짓이나 발성, 단어들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다. 아이가 무언가를 바라본 후 엄마의 시선을 끌며 자신의 관심을 나누기 시작할 때 우리는 아이가 공동 관심이란 개념을 발달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서툴지만 나와 이야기해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아이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즐기며, 짧지만 자신의 말로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대화가 중간에 끊기고 상대방의 말을 따라 하는 비율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관찰이었다. 새로운 장난감이나 사람이 나타나면 손부터 뻗어 만지려 들고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 대신,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집요하게 대상을 쳐다보는 것으로 관심을 표현했었다. 처음엔 그런 아이에게 내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도 참 많이 했었다. 아이가 한참 심각하게 관찰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나는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불쑥 나타나 자신의 흐름을 깨트리는 훼방꾼이었다. 그럴 때면 아이는 신경질을 잔뜩 부리며 자신이 관심 있던 대상에게서 더 이상의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나는 우선 아이가 관찰하는 시간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어느 정도 관찰이 끝난 것 같으면 대뜸 질문부터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상황이나 아이가 느꼈을 감정을 넌지시 건넸다. 그렇게 아이의 소통방법을 존중해주며 살며시 다가가니 아이도 자신의 영역에 나를 초대해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예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아이의 세상에 접속을 시도할 때도 엄마와 아기라는 상하구조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으로서 동등한 위치로 존재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다가가야 한다.
이제 우리 아이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지가 파악이 되었다면, 그 다음은 엄마인 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