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일까?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엄마'
어떤 엄마는 아이가 어떤 것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본능적으로 빠르게 파악하고, 환경을 조성해 적절한 타이밍에 아이를 잘 도와준다. 또 다양한 언어 자극으로 아이가 빠르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준다. 반면 어떤 엄마는 부모 자신의 불안도가 높아 지나치게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 탐색할 기회를 빼앗기게 되고,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상황이 해결되는 경험을 많이 한 아이는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무관심한 엄마'
간혹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아이와 상호작용하는데 큰 흥미가 없고 무관심한 엄마가 있다. 반대로 아이가 부모와 어떤 대화를 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독립적인 성향의 아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부모의 무관심이나 지나친 방해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일 수 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며 자신감을 쌓고 자존감을 높인다. 이때 부모는 적극적으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방해하지 않는다는 명목 하에 엄마가 아이의 옆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 눈과 손은 핸드폰으로 향하는 것은 금물이다. 본인 스스로 아이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면, 아이가 하고 있는 일을 함께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아이의 관심을 끌어 상호작용하는 기회를 삼기도 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존중하며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가끔씩은 아이를 귀찮게 방해하기도 해야 한다.
'재촉하는 엄마'
아이를 키우는 집의 하루 일상은 전쟁 통 아수라장과도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가방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의 과정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이런 과정에서 엄마는 아이에게 자꾸 재촉할 수밖에 없다. '얼른 밥 먹자, 빨리 와서 양말 신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이는 엄마가 왜 그렇게 바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이나 약속의 개념이 거의 없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그저 한없이 여유롭고 해맑다. 밥 한입 입에 믈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동차를 굴리기도 하고, 양말은 한쪽만 신고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 가져와 읽어달라는 식이다. 왜 서둘러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에게 엄마의 재촉은 부담이자 스트레스 일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는데 서툰 아이라면, 자신의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대신 '안 해, 싫어'로 일관하거나 귀를 닫고 회피해버리게 된다.
'친구 같은 엄마'
아이에게 최고의 학습은 놀이라고 했던가. 아이는 일상생활의 수많은 놀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언어 또한 놀이를 통해 발달하고 습득된다. 부모는 아이의 친구가 되어 함께 역할놀이도 하고, 다양한 신체놀이를 통해 질 높고 우수한 많은 언어 자극을 시도해볼 수 있다. 단, 엄마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학습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친구 같은 엄마는 아이에게 풍부한 언어를 제공해주는 언어 교사이자 놀이교사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