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아이는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얌전하고 통제가 잘 되는 아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되기까지 참 많이도 울었다.
규하는 정말 잘 웃지 않고 시니컬한 아이였다. 다소 온화한 인상이라는 평을 듣는 남편과 나는 아이의 표정들이 한없이 낯설고 아쉬웠다. 다른 아이처럼 까르르까르르 잘 웃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규하가 아기였을 때, 나는 하루 종일 아이를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내 몸에서 1초만 떨어져도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 엄마 품을 떠나지 않으려 유난히 우는 아이였다. 남편이 집에 오기 전까지 나는 빵 한 조각, 떡 같은 것들만 입에 겨우 욱여넣고 끼니를 때우는 게 일이었다. 출산하고 2달이 지나니 8킬로가 저절로 사라졌다.
우리 아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오감 과민', 모든 감각이 예민했다. 반찬 뚜껑 닫는 소리에도 자지러지게 울고,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안거나 만지면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울기 바빴다.
밥은.. 정말 어릴 때부터 포기한 지 오래다.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루 종일 젖만 빨려고 했는데, 내 젖양은 겨우 아이 목을 축일수 있는 양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유축을 해도 20ml도 채 안 나올 때였다. 억지로 분유를 먹여도 하루 총량이 3-400ml를 넘기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는 기필코 배불리 먹이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분유 일지를 빼곡히 2권을 써냈다.
모든 엄마들이 자기 아이는 다 키우기 힘들다고 한다. 나도 내 기준에서는 정말 힘들었다. 주로 집에만 있을 때는 괜찮았다. 아이가 잘 웃지 않고 인상만 쓰고 있어도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어도 됐으니까.
하지만 돌이 가까워지니 나도 아이도 심심하고,아이가 너무 엄마랑만 있어서 더 낯을 가린다는 주변 말들이 신경 쓰여공동육아도 하고 문화센터도 다니며 바깥활동을 시작했다. 규하는 지금이나 그때나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싫어한다고 표현하면 맞겠다.
공동육아를 하면서 10시부터 2시 정도까지 모임을 하면, 규하는 내내 울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 받게 됐던 다른 엄마들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쟤는 왜 저렇게 예민하고 까탈스러울까'하는 시선들... 나의 자격지심이었을까,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나에겐 왠지 모를 소외감과 상처가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서로 잘 어울려 놀 때, 나는 규하를 안고 내내 이방 저 방 옮겨 다니며 달래는 게 일이었다. 식당에 가도 카페에 가도, 다른 엄마들은 밥 먹고 차마시며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수다를 떨 때, 나는 아기띠로 우는 규하를 안고 서서 혼자 밥 몇 숟갈을 겨우 입에 넣다가포기하기를 반복했다.
따뜻한 봄이 되어 집 앞에 예쁜 공원으로 다 같이 김밥을 싸들고 나들이를 갔던 날, 다른 아이들과 엄마들이 돗자리를 깔고 오순도순 김밥을 나눠 먹을 때에도 나는 어김없이 자지러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그 공원을 한 시간 넘게 안고 돌면서 달래지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그만둬야겠다.'
그 과정들이 나만 상처가 되었는지 알았는데, 아이에게도 상처가 되는 기억으로 남겨졌다. 지금도 그때 만났던 아이들과 엄마들을 길에서 만나면 나와 웃으며 걸어가다가도 갑자기 울며 집에 가자고 안 쓰던 떼를 쓰곤 했다. 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매번 그러는 것을 보고서야 그때 내가 아이를 위해 했던 것들이 아이에게는 너무 싫고 힘들었던 일이었구나 깨달았다.
그렇게 공동육아를 버티다 그만두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 보자 결심했다. 그 이후로는 주로 아이랑 둘이서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규하가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날은 아빠가 오기 전까지 온종일 집에서만 보냈고, 반대로 밖에 나가자고 하는 날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언제 어디든 데리고 나갔다. 오로지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춰 나의 일상을 바꿨다.
친구들부터 아는 지인들까지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 아이에게 내 사랑을 눈치보며 제한하기 싫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아이가 원하는 대로의 육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해 두 해가 지나니 비로소 안정된 규하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낯선 사람이 만져도 울지 않고, 만지는 것이 싫으면 만지지 말라고 얘기하고 자기 할 말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자기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울기보다는 그렇게 하면 속상하다고 곧바로 말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와 우리아이는 참 많이도 아팠던 것 같다. 너무 힘들 땐 놀이치료사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하며 위로를 얻곤 했다.
우리 아이가 말이 느리진 않았기 때문에 말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어머님들의 마음과 동일한 마음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되돌아보니 나름 소외되는 경험을 해봤던지라 맘카페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유독 힘든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의 글들을 보면 많이 공감이 된다. 언어치료사인지라 그런지특히 아이의 말과 관련된 글들을 보면 유독 마음이 아프고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분들도 나처럼 사람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계시진 않을까.. 혼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계시진 않을까..
내가 그분들께 드릴수 있는 이야기는다른 사람이 아닌 아이, 바로 우리 아이만 바라보고 집중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워보니 엄마는 아이의 눈을 보면 본능적으로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아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표정만 봐도 아이가 느끼는 감정들을 알 수 있다. 아이가 말이 느려서 엄마가 좌절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받는 엄마의 상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와 자꾸 비교하게 되는 마음 혹은 주변 환경들에서 겪게되는 좌절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한참 우울증도 찾아오고 가장 힘들었을 때가 제일 사람들을 많이 만날때, 다른 아이들의 좋은 점들과 어느새 우리 아이를 비교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비교와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나의 아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남들이 해서가 아닌 아이가 현재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함께 고민하여 발견하고, 아이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게만 들리는, 나만 알 수 있는 마음이 들려주는 작은 소리들을 따라가시길 바란다. 엄마는 알고 느낄 수 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말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또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와의 소통 문제일 것이다. 엄마의 언어가 아이에게 통하지 않고 대화 자체가 원활하지 않으니, 아이와 엄마 사이를 가로막는 어떤 벽이 느껴질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치료사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아이일수록 엄마는 아이의 수준으로 내려와서 아이에게 맞춰주어야 한다.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말을 잘하는 어떤 아이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우리 아이에게는 존재한다. 우리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엄마인 내가 그 부분을 더 신경 써주어야 한다.
인지적으로나 아니면 다른 문제가 없는 경우라면, 분명 말이 트이는 시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 시간을 그냥 무작정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안 된다.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가 있으면 달리기를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듯이 유독 언어를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서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더 잘 알려줘야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부드럽게 아이에게 다가간다면 아이도 곧 엄마와 시선을 마주할 것이다. 무한한 아이의 능력을 믿고 끈기 있게 아이를 응원해주시길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 다시 힘을 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