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아이를 알아야 한다.
왜 우리 아이는 말이 느린 걸까.
나는 말이 느린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아이가 대답하는 그 순간의 눈동자를 깊이 관찰한다. 겉으론 꿈뻑꿈뻑 멈춰있는 듯 하지만, 아이의 내면 속에 수많은 언어의 소용돌이가 일어나 아이를 순식간에 덮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말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기 직전의 아이의 표정을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단순히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는 하고 있지만 적당한 말을 선택하지 못해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향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언어의 폭포수 속에서 적절한 의미의 대답을 찾아내는 데 혹은 자신이 만족하는 의미의 문장을 구성해내는 데에 다소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나는 이런 성향 때문에 말이 느린 아이들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단, 언어 이외에 다른 발달이 정상발달 범위 내에 있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
나 또한 그런 성향의 사람 중 하나이다. 나는 전형적으로 성격 급한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아주 느린 사람이다.
4차 혁명이다 뭐다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나는 너무도 아날로그적이다. 말이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생각도 느리다.
내가 말이 느린 특별한 이유를 꼽자면 언어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입 밖으로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의 힘이 느껴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그 의미를 더 크게 두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을 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는 선별작업들을 거친 후에야 말을 할 수가 있다.
언어라는 것에는 어원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단어 속에는 오랜 역사들이 숨어있고 오랜 역사들을 살아오면서 그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말들에 무게감을 느낀다.
사십여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이후로는 내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느낌들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과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 차 있지만, 어떻게 하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가깝게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많아서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겉으로 보기엔 말이 없고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마음속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끊임없이 적당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단어들을 떠올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내가 이렇다 보니 말이 느린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많이 기다려주는 편이다. 혹시 나와 같이 말을 고르고 또 고르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아이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자신 만의 결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을 기질이라고도 하고, 성향이라고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외향성을 지니고 태어나 자신이 느끼는 세상의 모든 자극들을 반기며 그것에 반응하는 것을 기꺼이 즐거워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내향성을 지니고 태어나 쏟아져 들어오는 자극들에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느끼는 모든 자극들이 전혀 즐겁지 않다. 그 대신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하고 긴장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가지고 태어나는 결은 엄마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 도 있다. 같은 결을 가지고 태어나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문제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인 엄마와 아이의 결이 다를 때 생긴다. 매우 외향적이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실시간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장착하고 태어나 이 세상의 모든 자극을 즐기고 그것에 기쁨을 느끼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엄마와 전형적으로 내향적이며 이 세상의 모든 자극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하는 아이와 만나게 되었다면 어떨까. 아마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주는 모든 자극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일 것이다. 언어치료를 받으러 오는 아이들 중에는 간혹 엄마와 아이의 성향이 다름으로부터 발생되는 사소한 문제들로 관계가 틀어진 경우를 보기도 한다.
보통 외향적인 아이들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는 가장 빠른 도구가 말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다른 아이들보다 말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빠르게 발달시켜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반면에 내향적인 아이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되고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경우 외향적인 아이들보다는 내향적인 아이들이 언어에 대한 반응의 크기도 작고 빈도도 적기 때문에 언어의 노출량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성향의 차이가 반드시 아이의 언어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 느린 아이들 중에서는 내향적인 성향인 경우 그것이 언어발달에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간혹 지나치게 외향적인 아이들 중에서는 모든 신체 및 운동발달이 월등히 빠르고 에너지까지 넘쳐나 하루 종일 발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뛰어다니지만, 말이 느린 아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언어 발달이 다소 느리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정상적인 언어발달에 도달하게 된다. 이 아이들은 결국에는 정상 언어발달을 하게 되고 그것은 시기의 문제이다. 반대의 경우로 언어 발달이 또래에 비해 매우 빠르지만 신체나 운동발달이 더딘 경우의 아이들도 있다.
우리는 아이가 말이 느리면 다른 모든 발달들을 제쳐두고 오로지 아이의 말에만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말이라는 것을 세상에 내뱉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뇌의 발달에서부터 신체구조들의 기능적인 발달, 정서발달, 인지발달 등의 모든 발달과업들이 적절하게 성장하고 발달이 되어야 말(언어)이라는 하나의 완성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말이 느린 이유는 아이들마다 수만 가지 이유가 있다. 엄마는 그 수많은 이유들 중에서 우리 아이가 왜 말이 느린 것인지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발견해 내야 한다. 또 한 가지, 엄마들이 놓치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아이가 말이 느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말이 느린 것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엄마는 먼저 아이를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