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노출된 양만큼 언어를 배운다.
생후 3년,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의 아이들의 뇌는 스펀지가 물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것과도 같다. 아이들은 듣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다 듣고 있고, 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일상을 온몸으로 흡수한다. 언어도 아이가 흡수하는 일상의 일부분이며, 엄마의 말소리를 흡수하고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모든 언어를 흡수한다.
두 돌이 되기까지 나는 규하에게 말할 때 의식적으로 대답을 요구하는 '의문사 질문'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언어재활사라는 직업 특성상 아이의 언어를 끄집어내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사용하여 언어를 유도하게 되는데 아이들과 대화할 때 나의 언어에는 그런 습관이 배어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무의식적으로 언어치료를 할 때 사용하는 말투와 질문들을 쏟아부으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런 습관을 모두 버리려고 애썼다. 규하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에는 언어재활사가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었고, 무엇보다 언어재활사의 아이는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를 기대하는 사람들과 나 또한 그 욕심을 채우고자 아이를 힘들게 하려는 나 자신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사용하는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게 뭐야?'라는 질문일 것이다. 단순한 이 질문은 사물의 이름을 요구하여 아이에게 명쾌한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아이의 입장에서도 말을 시작하기에 부담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제일 편하게 사용했던 그 질문을 나의 아이에게는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의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첫 경험이 나를 경직되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뭐든지 자연스러운 것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았을 텐데, 아무리 많은 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들과 많은 시간과 경험을 공유했다 하더라도 나의 아이는 처음이었던지라 알 수 없는 그 처음들이 나를 그토록 긴장시켰다.
그래서였는지 우리 아이는 많은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제일 먼저 사용하는 '이게 뭐야?'라는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대신에 "엄마, 이거!"라고만 말했다. '무엇'이라는 의문사 외에도 "누구야?, 어디야?"라는 질문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규하와 연령이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오래된 친구와 종종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어느 날 친구의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이게 뭐야?, 엄마, 뭐해?"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의문사 질문만 하지 않을 뿐,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 어려운 어휘들도 많이 알고 있었고 남자아이지만 수다스럽고 말이 빠른 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 살이 다 되어가도록 나에게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날부터 나는 아이와 대화할 때 의도적으로 막았놓았던 질문의 뚜껑을 열었다. 몇 달 후 아이는 대화의 절반 이상을 질문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의문사의 발달 순서를 따라가지 않았고, 특이한 현상을 나타냈다.
보통 아이들은 의문사 중에서도 '무엇, 누가'의 사용이 가장 먼저 나타나고, 첫 단어가 나타나는 시기에 '과잉 일반화'를 사용하듯 의문사 출현에 있어서도 '누가, 언제, 어떻게'등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두 '무엇'으로 대신하는 등 의문사의 과잉 일반화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 아이에게 제일 먼저 나타난 의문사는 '무엇'도 아니고, '누가'도 아닌 '왜'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어느 날 남편에게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궁금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내가 하는 말 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왜'라고 말이다. 나는 아이에게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 옆에 있는 남편에게 항상 '왜'라고 질문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가 말하는 '왜'라는 질문을 들으며 차근차근 흡수하고있었고, 의문사 중에서도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왜'를 제일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이는 '왜'라는 말로 '누가, 언제, 무엇'을 대신하여 질문하곤 한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에 노출되고 흡수되는 양에 따라 아이들이 습득하게 되는 언어들은 달라진다. 우리 아이가 나에게 노출되었던 언어의 양에 따라 의문사 발달 순서가 뒤죽박죽 되어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부모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어휘 폭발기를 겪는 시기에 단어를 한 두 번만 듣고도 바로 배우는 것을 보고는 몇 번만 말해주면 말을 금방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휘폭발기에 나타나는 특별한 과정 중 하나일 뿐, 언어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평생을 사용하게 될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생후 3년까지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양의 언어가 노출되느냐에 따라 또 얼마나 다양한 어휘들과 문장들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아이가 습득할 수 있는 언어의 격은 달라진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에 따라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속도 또한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언어가 완성되기 이전의 아이에게 부모가 더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국어를 습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생후 3년까지로 이 시기에 아이에게 노출되는 언어의 양에 따라 아이의 언어가 결정된다.
그림출처: by 초록담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