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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Jul 08. 2020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예의가 필요합니다.

10,000분의 시간.

어느덧 언어발달과 관련한 공부를 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어린아이가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고 발달해가는지를 연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아이는 언어발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또 한 가지 '훈련을 받아야 할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라는 것이다. 


부모상담을 하다 보면 다양한 케이스의 부모를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내가 거의 매달리다시피 부모교육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부모와 아이의 라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경우이다.

엊그제, 아는 분을 통해 전화로 부모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말만 느린 아이라고 생각해서 간단한 부모교육을 해드리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지만, 나는 통화가 계속될수록 아이의 엄마에게 마치 내 아이가 방치되고 있는 것처럼 화를 담아 교육을 하고 있었다. 쓴소리가 듣기 싫어 형식적으로 전화를 끊고 싶어 하는 어머니와 아이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듯이 끊임없는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와 대치상태가 계속되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우리가 이해할만한 언어를 아직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도 '인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잠시 잊을 때가 있다. 자신의 욕구가 해소되지 않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꺾기 위해 누군가에게도 내본 적이 없는 큰 소리를 아이를 향해 내지를 때, 생명으로 잉태된 순간부터 엄마와 연결되어 있던 아이가 탯줄이 잘려 엄마와의 연결고리를 찾느라 안아달라고 붙잡는 손길을 애써 무시할 때, 우리는 문득 잊는다. 아이에게도 '인격'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인격은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부모로부터 더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 느린 아이들은 무언가의 이유로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 뿐, 모든 감정과 나름의 이유는 고스란히 마음에 담겨 있다.


언어재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은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고개를 돌리다 무심코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이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가?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혹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엄마의 손을 의지해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고 하는가? 
-엄마가 눈앞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아이를 안아주었을 때 울음이 금방 사그라지고 안정을 되찾는가? 
-엄마와 아이만이 알고 있는 은밀히 주고받는 신호가 있는가? 
-아이가 울 때 엄마를 거부하거나 밀어내지는 않는가? 


언어재활을 시작하는 부모가 가장 오해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아이가 언어치료실에만 다니면 말이 곧 터질 것이라는 착각이다. 어떤 부모는 언어재활사가 아이의 말을 책임져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말이 느린 아이가 주 2회 언어치료를 받는다고 했을 때 일주일 동안 언어재활사를 만나는 시간은 10,080분 중에서 고작 80분이 전부이다. 언어재활사를 만나는 시간을 제외한 10,000분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주양육자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또한, 아무리 언어재활사가 훌륭한 언어 스킬을 겸비하였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부모를 넘어서지 못한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이 숨겨져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10,000분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가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주고,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부모에게 보여주려 애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예의가 존재한다. 부모는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한 사람으로 대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와 아이는 '라포'를 형성해야 한다. 라포를 형성한다는 것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도 관계를 회복하고 신뢰를 쌓는데 중요한 조건이 된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들을 무조건 그리고 반드시 신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아이에게 신뢰를 얻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부모가 아이와 자연스럽게 신뢰를 쌓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겨우 아이의 신뢰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언어치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회복'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어른이라 일컫는 우리들도 불편한 사람과의 자리는 피하고 싶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도 똑같이 자기가 신뢰하지 않는 상대와의 대화에서는 소극적이며 대화하고 싶은 동기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말이 느린 아이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말을 하는 과정 어딘가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또래 아동과 같이 언어를 발달시키는 과정을 따라잡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열심히 자극을 주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순간에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순간에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한번 되돌아보자. 아직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표정이나 감정, 태도 등 비언어적인 신호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은 방법을 모르는 아이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세상에 문을 열고 들어가 신뢰를 쌓고 관계를 회복할 때,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엄마의 말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화려한 언변보다 진심이 담긴 한 마디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언어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기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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